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애굽기20:5)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인간적인 질투를 떠올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에게 빼앗길까 두려워서 움켜쥐는 감정, 혹은 비교 속에서 열등감을 느낄 때 생기는 감정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질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거룩한 열심이며, 당신의 백성을 향한 불타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히브리어로 ‘질투하다’는 단어는 카나(קַנָּא)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의 70인역에서는 헬라어 젤로스(ζῆλος)로 번역되었고, 신약에서는 ‘열심’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요한복음 2장 17절에서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여기 바로 그 ‘열심’인, 젤로스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신 질투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왜 질투하실까요? 질투란, 사랑의 반영입니다. 무관심한 사람은 질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집중하고 계시기에, 우리가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분을 등질 때 마음 아파하시고 반응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질투하신다는 것은, 곧 우리를 절실히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열심이 아니라, 거룩하고 완전한 열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심은 시기심이나 분노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다 스스로 무너질까 봐 우리를 향해 뻗으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단순히 ‘우상’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생명과 시선을 빼앗아 그분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마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해 갈급해 하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역설적인 진리입니까? 모든 것을 소유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향해 ‘목말라 하신다’니 말입니다. 그 갈증은 단지 순종을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관계를 갈망하는 차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다시 그분만을 바라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이 마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때, 우리의 영혼은 목말라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 갈증은 단지 우리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신 갈증의 반향이며 메아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갈망하시기에, 우리도 그분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을 다해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의 갈증은 해갈되고, 동시에 우리의 갈증도 해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붙든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그분만을 주인으로 고백할 때, 그 열심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이 세상의 우상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 주변에 가득합니다. 성공, 돈, 인정, 쾌락, 자아… 그것들은 바알과 아세라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질투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고, 동시에 우리를 목마르게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그 사랑의 열심 앞에 멈추어 서십시오. 그리고 물으십시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나만의 열심으로 섬기려 하는가, 아니면 그분의 열심에 응답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갈증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나는 매일 그분께 돌아가고 있는가?
이제는, 그분의 질투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임을 기억하며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향해 열심을 품고 계십니다.
'성경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징계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0) | 2025.05.16 |
---|---|
선한 양심, 하나님만을 향한 손 (0) | 2025.05.15 |
흙으로 지은 바 된 아담과 생령이 된 아담 (0) | 2025.05.14 |
양으로 살기, 예수처럼 걷기 (0) | 2025.05.14 |
고엘제도-우리의 상환자 되신 예수님 (1) | 2025.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