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15장 22~27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홍해 바닷가에는 노랫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미리암은 소고를 들었고 여인들은 그 뒤를 따라 춤을 추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뒤에서는 애굽의 병거가 쫓아왔고 앞에는 바다가 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노래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노래였습니다. 훗날 성경은 이 사건을 두고 모세 안에서 세례를 받은 일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0:1~2).
어느 교회에 음치로 소문난 할아버지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박자는 늘 어긋나고 음은 위아래로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젊은 시절 병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십자가 은혜를 알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부르는 찬송에는 음정보다 먼저 눈물이 있었습니다. 화음과 오케스트라가 완벽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하나님은 교회 안에 음치를 두시지 말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찬양은 죽은 자가 살아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노래가 끝나자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22절). 이 말을 직역하면 모세가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떠나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승리의 바닷가에 더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애굽 군사들이 남긴 물건도 챙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승한 팀이 트로피를 안고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는데 감독이 억지로 버스에 태우는 장면과 같습니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수르 광야였습니다. 사흘을 걸어도 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백성을 데려가신 곳이 하필 물 없는 광야였습니다. 믿으면 길이 활짝 열리고 형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길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흘 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언약의 말씀 안으로 이끄시는 구속의 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그 길을 자기 길처럼 걸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흘을 걷고 나서야 그들은 물을 만났습니다. 지독한 폭염 속 산행에서 물통이 바닥나 겨우 찾아간 약수터에 '식수 부적합' 팻말이 붙어 있는 격이었습니다. 그곳 이름이 마라, 곧 '쓴맛'입니다. 사람들은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 냈습니다. 여기서 '원망'으로 번역된 말은 '밤을 지내다'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불평했습니다. 시편 30편 5절은 저녁에 울음이 깃들어도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하룻밤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을 때, 엑스레이는 병을 만들지 않고 이미 몸에 있던 병을 보여 줄 뿐입니다. 마라가 그랬습니다. 홍해를 건너 찬양까지 했지만 그들 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애굽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라에서 그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셨습니다. 구원이 자기들의 잘남 때문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의 피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면서 죄의 법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탄식했습니다.
원망이 이어지는 동안 모세는 계속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목마름을 빨리 해결해 주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언약을 알게 하시는 데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곁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밤새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겹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물이 달아졌습니다. 어떤 학자는 구멍이 많은 나무가 물을 걸러 냈다고 설명하고, 또 어떤 이들은 나무만 나오면 곧바로 십자가로 연결합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나무의 성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모세가 그대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요리 선생님이 "이 국에 이것을 넣어라" 하고 일러 주었는데 제자가 그대로 넣자 맛이 살아났을 때, 사람들이 재료의 효능을 따지는 동안 정작 핵심은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기록합니다. 시험은 선생님이 학생의 실력을 몰라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점수로 학생의 수준을 학생 본인에게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수준은 자기 구원에 기뻐하는 데서 멈춰 있었습니다. 아직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니 이때의 법도와 율례는 유월절 규례와 모세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한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순종을 통해 장차 오실 분을 미리 보이셨습니다. 말씀으로 오셔서 그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빌 2:8)가 바로 그분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됩니다(롬 5:19).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애굽에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으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26절).
이 구절을 두고 암이든 무엇이든 기도하면 낫는다는 약속으로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이 가리키는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병은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입니다. 이스라엘도 본래 같은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으나 유월절 어린 양의 피 아래 있었기에 면했습니다. 그러니 치료란 고칠 수 없는 죄의 병에서 회복시켜 주시는 일을 뜻합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일을 치료로 표현합니다(말 4:2, 사 58:8, 렘 30:17).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손가락 가시를 빼 달라며 하소연하는데, 의사는 심장 혈관이 막힌 것을 먼저 본다고 합시다. 환자가 모르는 병이 더 크고, 의사는 그 병을 고치러 왔습니다. 예수님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2:17). 우리는 모두 죄라는 병 때문에 의사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마라를 지난 이스라엘은 엘림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는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습니다. 샘 열둘은 열두 지파에게 주어지는 진리를 가리키고, 일흔 그루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온전히 주어지는 안식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그 물 곁에 장막을 쳤습니다. 엘림을 주시려고 마라를 주신 것입니다. 겨울을 지나지 않은 나무에는 봄꽃이 피지 않습니다. 마라가 없으면 엘림도 없고,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쓴 물 앞에서 자기 실상을 본 사람만이 달고 시원한 샘물이 값없는 선물임을 압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지나간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뒤에도 우리 삶에는 마라 같은 날이 옵니다. 원망이 터지고 내 속의 쓴맛이 드러나는 날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 쪽으로 끌고 가십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진리의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시게 됩니다. 이 물은 한 번 마시고 끝나는 물이 아니라 날마다 마셔야 합니다. 마라를 지나는 날에도 엘림의 날에도, 날마다 그분께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늘의 안식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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