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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 엘림을 떠나 광야로,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말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0. 31.

출애굽기 16장 1~15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엘림은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물 댄 샘이 열두 개, 그늘을 드리운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였으니, 마라의 쓴 물에 입이 말랐던 백성에게는 천국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둘째 달 십오일, 이스라엘 온 회중은 그 엘림을 떠나 시내 산과 엘림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릅니다. 목적지가 엘림이 아니라 가나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쉼터라고 느껴졌어도 눌러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슷한 착각을 합니다. 형편이 풀리고 가정이 평안하고 교회가 든든하면 "
이제 안식처를 찾았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 땅은 안식처가 아니라 말씀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걸어가는 광야의 길입니다.

본문은 날짜를 콕 집어 "
둘째 달"이라고 합니다. 첫째 달에는 물이 없어 원망했고, 둘째 달에는 먹을 것이 없어 원망합니다. 물과 양식, 이 둘은 따로 놀지 않고 한 쌍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 쌍으로 하나의 계시를 주시려 합니다. '광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는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와 뿌리가 같습니다. 마라와 엘림을 지나왔는데도 여전히 말씀에 메말라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으로 먹이고 기르십니다.

그런데 백성은 또 원망합니다. "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라의 원망이 끝난 줄 알았는데, 문법으로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겁니다.

어느 아버지가 과거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
그때가 좋았지" 하고 웃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때는 새벽 점호에 얼차려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고생은 지워지고 좋았던 한두 장면만 남습니다. 이스라엘의 애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벽돌을 굽다 채찍에 맞고 갓난아이를 나일 강에 빼앗기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라고 기억합니다. 민수기 11장에서는 값없이 먹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까지 그리워합니다. 실제 애굽이 아니라 환상 속의 애굽입니다.

이 마음이 낯설지 않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시절, 규칙을 지키며 나름 의롭다고 느끼던 때가 문득 그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 믿은 뒤에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으면 슬그머니 세상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자기 생존을 위해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구원에 하나님이 맞춰 주시길 바란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구원은 그와 본질적으로 다른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원망 한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라." 원망의 한복판에서 은혜가 쏟아집니다. 성경에서 비는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부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날마다 일용할 것을 거두라"는 말씀은 원문 그대로 풀면 '그날 안에서 하루의 말씀으로 거두라'는 뜻입니다. 만나는 배를 채우는 빵 이상이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참 떡을 주시나니,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 하신 것이 바로 이 만나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준행하다'는 히브리어로 '걷다, 동행하다'입니다. 내 말씀과 함께 걷겠느냐는 시험입니다. 예수님도 오천 명을 먹이시기 전에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빌립은 곧바로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합니다." 눈앞에 하늘의 양식이신 예수님을 두고도 땅의 양식만 계산하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으로 우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땅의 계산에 매여 있는지 비춰 주시는 겁니다.

"
여섯째 날에는 거둔 것을 준비하라.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여섯째 날은 창세기 1장 이후 처음 나오는 표현입니다. 여섯 날은 일곱째 날, 곧 하나님이 이루시는 안식을 향해 달려갑니다. 매일 거두는 만나는 앞으로 이루어질 안식을 미리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날마다의 말씀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안식에 이르게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말합니다. "
저녁에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저녁은 유월절 어린 양이 죽고 피가 뿌려지는 시간이고, 아침은 새롭게 살아나 그분의 영광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을 들으셨다"는 말씀을 우리는 흔히 '기도 응답'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고기와 빵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씀을 주시려 오셨고, 그 빵과 고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려 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시킵니다. "
온 회중에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하라."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구름 속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고기와 떡을 먹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은 죽음의 음식이 되었을 겁니다. 어린아이가 "과자만 먹겠다"고 떼쓸 때, 사랑이 깊은 부모는 아이를 달래며 밥상을 차립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했더니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은혜인 것은 아닙니다. 소원대로 받고 하나님을 잃었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반대로 원하는 것을 못 받았어도 구름 속에 나타난 영광, 곧 십자가를 보게 된다면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것이 사십 년 광야가 가르치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를 네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여기서 '듣다'는 '샤마'인데, '듣다'와 '순종하다'를 함께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르짖음에 맞춰 주셨다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순종을 이루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해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뒤 아침에 생명의 떡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저녁의 고기와 아침의 떡이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저녁이 되니 메추라기가 진을 덮었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내렸습니다. 이슬이 마르자 광야 지면에 서리처럼 작고 둥글고 가는 것이 덮여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것이라 사람들이 서로 묻습니다. "
이것이 무엇이냐?" 히브리어로 "만 후?" 이 말이 그대로 '만나'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대답합니다. "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메추라기는 민수기에 따르면 한 달 동안만 주어졌고, 만나는 사십 년 내내 내렸습니다. 메추라기는 성막이 세워지기 전까지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의미를 보여주는 표지였고, 만나는 그 이후에도 계속 말씀의 양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만나는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없던 것, 영의 양식,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10장 말씀처럼 그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
이것이 무엇이냐"를 묻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 앞에 놓인 형편이 만나인지 광야의 모래인지 몰라 헤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원망하는 우리를 돌려세우시고 날마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빵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도 먹이십니다.
엘림을 그리워하지 말고, 애굽을 미화하지 마십시오. 오늘 아침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거두십시오. 그 말씀 속에서 십자가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