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복음

포도주가 된 물, 그리고 열린 하늘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19.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1:51, 2:9~11)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문장은 우리에게 깊은 은혜와 신비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은 단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신비한 사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의 사역 전체,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메시야로서의 정체성,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함축하는 상징적인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적을 통해 ‘
자기 영광을 나타내셨고, 제자들은 그를 믿게 되었다’고 요한은 기록합니다(요 2:11). 이것은 단순한 놀라움이나 기적의 충격이 아닙니다. 믿음의 시작점, 신적 정체성의 계시, 그리고 새 시대의 도래에 관한 깊은 묵상이 요구되는 내용입니다.

혼인 잔치가 한창일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단순한 결례를 넘어서는 치명적인 위기였습니다. 고대 유대 문화에서 포도주는 ‘
기쁨’과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기쁨이 고갈되었고, 축복이 끊겼으며, 수치와 민망함이 찾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인간 삶의 근본적인 진실을 드러냅니다. 겉으로는 잔치처럼 웃고 떠들고 풍성해 보여도, 어느 순간 우리의 기쁨은 바닥을 드러내고, 기대는 무너지고, 영혼은 목말라 있습니다. 마치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는 있는데, 그 안에 채울 ‘
참된 정결’과 ‘기쁨의 본질’은 사라진 모습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빈자리에 오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그 위기의 순간, 주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지 부족함을 채워주는 기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허함 속에 오셔서, 새로운 생명과 기쁨으로 채우시는 사건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께서 물을 채우라 하신 그릇이 '
정결 예식용 돌항아리'였다는 점입니다. 이 항아리는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형식과 외적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시고, 그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장면은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율법에서 은혜로의 전환,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의 도약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이제는 외형적 의식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새 포도주를 주노라. 율법의 물이 은혜의 포도주로 바뀌는 시대가 도래하였노라.”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은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새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의 표적은 이미 십자가를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실 그 보혈이야말로, 죄인을 구원하고 새 생명을 주시는 최고의 포도주입니다.

잔치를 맡은 자는 깜짝 놀라며 신랑에게 말합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었도다!” (요 2:10)

이 말은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새 시대의 질적 전환을 암시합니다. 세상은 점점 약해지고 쇠퇴하고 시들어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점점 더 풍성하고 깊어갑니다. 그분이 주시는 복음은 마지막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최고의 포도주와 같습니다.

이것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성격입니다. 이 땅의 것들은 한순간 찬란하다가 금세 사라지지만, 하늘의 복음은 점점 빛을 발하며 마지막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계시록 19장에 나오는 ‘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예표이다. 가나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완전한 연합을 상징하는 영원한 혼인 잔치의 모형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잔치는 작고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날엔 온전한 포도주가 흘러넘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기적은
‘기적(dynamis)’이 아니라 ‘표적(세메이온)’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기적은 단순한 능력의 발현일 수 있지만, 표적은 그 너머를 가리키는 ‘사인(sign)’입니다. 가나의 표적은 단순히 “와, 놀랍다!” 하고 끝날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 를 묵상하게 만드는 신앙의 발화점입니다.

제자들은 이 표적을 보고 그를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해 ‘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기적을 원합니다. 삶의 문제 해결, 병의 치유, 재정의 회복, 관계의 회복… 그러나 주님은 가나의 잔치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기적을 보되, 그 기적 너머의 나를 보아라. 내가 주는 포도주는 단지 너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포도주는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표적이요, 너희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하늘의 기쁨에 대한 맛보기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우리는 세 가지 큰 은혜를 보게 됩니다. 첫째, 우리의 고갈된 기쁨을 채우시는 예수님입니다. 둘째는 율법의 돌항아리에 은혜의 포도주를 부으시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기적의 껍질 너머,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전히 포도주 그 자체만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포도주를 주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나는 이 표적을 통해 참된 믿음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이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니, 제자들이 그를 믿더라.” (요 2:11) 우리도 그분의 영광을 보고, 믿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