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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폭풍 속의 등불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0.

어느 겨울 저녁, 한 외과 의사가 수술실을 나섰습니다. 열두 시간의 수술이었습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복도의 형광등 불빛은 눈을 찌를 듯 날카로웠습니다. 보호자 대기실 앞을 지나칠 때, 그는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한 가족이 보였습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곁에 조용히 기대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 이상하게도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자리였지만, 그 가족의 얼굴에는 어딘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의사는 오랫동안 그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고요함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늘 조용한 서재에서, 혹은 아무도 없는 새벽 병원 옥상에서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은 달랐습니다. 그들 주변에는 온갖 소란이 있었습니다.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응급 방송, 차갑게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 안의 어딘가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환경이 그들에게 고요함을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고요함을 지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평온을 조건으로 이해합니다. 조용한 방, 걱정 없는 일상, 해결된 문제들, 그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마음이 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은 좀처럼 그런 조건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마감은 겹치고, 관계는 어긋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가장 안정적인 순간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만약 평온이 조건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평생 그 조건을 기다리다 끝나고 맙니다.

선불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스승은 강가로 데려갔습니다. 바람이 불었고, 강물은 출렁였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강물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흔들림 속에서도 강이기를 바라는가." 강은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강은 여전히 강입니다. 흐르고, 깊고, 제자리에 있습니다. 고요함이란 파도가 없는 수면이 아니라, 파도가 일어도 바닥이 움직이지 않는 깊이일지도 모릅니다.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 칠레 광산 붕괴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서른세 명의 광부가 지하 700미터에 갇혔습니다. 구조대가 닿기까지 무려 69일이 걸렸습니다. 그 긴 어둠 속에서 광부들은 생존을 위해 싸웠지만, 훗날 그들이 증언한 것은 단지 살아남은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생일을 축하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광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너진 산 안에 있었지만,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기쁨이 그 자리에 있을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빛도 없고, 공간도 없고, 내일의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쁨을 찾아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만들어냈습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내부에서 피워낸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기쁨의 얼굴입니다. 좋은 날에만 나타났다가 나쁜 날에는 사라지는 손님이 아니라, 어떤 날에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내 안의 무언가 입니다.

다시 그 의사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몇 달 뒤, 그에게도 힘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오랜 환자를 잃었고, 의료 분쟁의 한가운데 섰고, 가족과의 관계도 멀어졌습니다. 그는 무너질 것 같은 날들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 그 보호자 대기실의 가족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가르쳐준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의 태도였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5분씩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그대로였습니다. 분쟁은 계속됐고, 슬픔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5분 속에서 그는 천천히 자신의 바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는 수면 아래, 움직이지 않는 강바닥처럼 말입니다.

진정한 고요와 기쁨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꾸는 것입니다. 삶이 조용해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이 소란 속에서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는 연습입니다.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바라기 전에, 그 괴로움 속에서 의미 하나를 건져 올리려는 시도가 쌓일 때,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한 사람이 됩니다.

폭풍은 언제나 옵니다. 문제는 폭풍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 등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