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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야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1.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믿음의 선배들이 삶으로 증명한 진리입니다.

인류 최초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 때문에 숨어버렸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선포될 때에도, 불과 연기와 나팔 소리 가운데 온 백성이 떨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들판의 목자들도, 영광의 빛에 둘러싸였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읽어 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단순히 육체적 위험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분 앞에 선 피조물이 느끼는 경외심, 설명할 수 없는 영적 떨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경외함이 없는 종교적 활동은 그 뿌리부터 부실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교만과 자기 확신이 꺾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차이를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을 하나님이 당연히 기뻐하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깨달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피 흘리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바로 이 두려움, 경외심이 아벨의 제사를 다르게 만들었고, 그의 생애 전체를 새롭게 이끌었습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지옥과 심판을 두려워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물론 심판은 실재합니다. 그러나 위협이나 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만들 수 없습니다. 경외심은 신비한 것이며, 지식만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죄인을 깨우치실 때, 거룩하신 임재를 체험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정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고 절규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사 6:5)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외심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신앙은 이 경외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회자나 교회의 지도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낼 때, 회중은 저절로 경외함을 느끼게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이 광채로 빛났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무슨 위협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신앙은 얄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은혜를 압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기에, 동시에 우리를 받아주신 은혜가 더욱 놀랍고 감사한 것입니다. 두려움과 은혜는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 때,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혹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두려움 없는 가인과 같은 제사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아벨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이 다시금 경외심을 회복하기를, 그래서 그분의 은혜가 더욱 깊이 우리의 심령에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