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에 속한 사람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 영원이란 무엇인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3. 30.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에베소서 1:4)

어린 시절, 우리는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별 하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저 별빛은 수천 년 전에 출발한 거야. 저 별이 지금도 있는지조차 모른단다." 우리는 그때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별에서 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시간 너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성경은 말합니다. "영원이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영원이 있다."

우리는 흔히 영원을
"끝없이 긴 시간"으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을 시간의 연장선으로 보는 오해입니다. 영원은 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과 이후의 차원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태초'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와 다릅니다. 창세기의 태초는 우주가 시작된 시점, 곧 시간이 발생한 순간입니다. 천문학자들이 빅뱅의 순간을 계산하듯, 그것은 역산이 가능한 시작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태초는 그 이전입니다.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이 계셨던 그 '
처음'은 시작이 없는 시작입니다. 숫자로 도달할 수 없는 곳, 시간이 발을 딛기 이전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첫째 영원이라 부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하고, 디도서 1장 2절은 "영원한 시기 이전"을 언급하며, 로마서 16장 25절은 "영세 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구절들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같습니다. 우주가 생겨나기 전, 시간이 흐르기 전, 그 아득한 첫째 영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원이 있습니다. 이사야 66장 22절과 요한계시록 21장 1절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고, 계시록 22장 5절은 그 세계가 "세세토록" 곧 영원히 계속됨을 선언합니다. 이것이 둘째 영원입니다. 역사가 종결된 후에 열리는 세계, 끝이 없는 영원입니다.

이 두 영원 사이에, 마치 강물이 두 바다 사이를 흐르듯, 창조와 역사와 구속의 시간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시간은 영원과 영원을 잇는 통로입니다.

한 마을에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작업실 문을 닫기 전, 오랜 시간 동안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어떤 톱니바퀴를 어디에 놓을지, 어떤 소리가 정각을 알릴지, 어떤 사람의 손목 위에서 시간을 새길지, 설계는 시계가 만들어지기 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금속을 자르고 바퀴를 맞추고 태엽을 감았습니다.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시계는 완성된 목적을 다 이루고 멈출 것입니다.

그러나 장인의 기쁨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그러합니다. 첫째 영원 안에서 하나님은 설계하셨습니다. 그것은 기쁨에서 비롯된 설계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 9절은 하나님이
"그분의 선한 즐거움", 곧 기쁨과 기쁨에 따라 뜻을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의무감으로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으로, 사랑으로 계획하셨습니다.

그 계획의 첫 번째 내용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음이로소이다." 창세 전부터 입니다. 우주가 존재하기 전부터 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영원의 핵심입니다.

두 번째 내용은 아들을 그리스도로 예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0절은 그리스도가
"창세 전부터 미리 알으신 바" 되셨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구속자가 되기로 작정되었습니다. 아직 타락도, 죄도, 눈물도 없는 그 영원 안에서 말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를 향한 계획이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지가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의 선택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1절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영원한 목적대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목적"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로마서 1장 13절에서 바울이 "내가 계획하였노라"고 할 때 쓴 단어와 같은 어근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신 분입니다. 충동적으로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한 계획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종류의 뜻이 있으신데, 완전한 뜻과 허락하시는 뜻입니다. 완전한 뜻은 첫째 영원 안에서 세우신 계획입니다.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을 그리스도로 삼고, 사람들을 아들의 형상으로 빚어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방해받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변함없이 집행됩니다.

허락하시는 뜻은 시간 안에서 작동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와 실패와 반역까지도 허용하십니다. 아담의 타락을 막지 않으셨고, 가인의 손에서 아벨을 지키지 않으셨으며, 욥에게 고난이 임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굴곡과 우회로는 결국 완전한 뜻의 성취를 향해 수렴됩니다. 허락하시는 뜻은 완전한 뜻의 반대가 아니라, 완전한 뜻이 굴곡진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방식인 것입니다. 마치 강물이 때로는 돌을 만나 방향을 틀고 때로는 늪을 지나지만 결국 바다에 이르듯이 말입니다.

설계는 창세 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실현은 창세 이후에 시작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어린양이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역사의 특정 시점이지만, 그 죽음의 실재는 창세로부터 이미 효력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아벨이 제단에 첫 제물을 드렸을 때, 이스라엘이 출애굽 전날 밤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그 모든 순간 십자가의 그림자는 이미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름도 창세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계시록은 말합니다. 나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내가 믿음을 고백한 그 주일 아침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 첫 순간부터였습니다. 고백은 기록의 원인이 아니라, 기록된 자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3절은
"창조의 일은 창세로부터 완성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안식, 그분의 완성은 이미 시작과 함께 주어져 있었습니다. 역사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것이 드러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할머니의 무릎에서 올려다본 별빛 이야기에서 그 별빛이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 눈에 닿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첫째 영원에서 출발하여 역사의 시간을 건너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둘째 영원 안에서 꺼지지 않고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영원이란 단순히 긴 시간이 아닙니다. 영원은 하나님이 계신 자리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거하는 차원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은 지금 이 순간의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알고 택하신 하나님의 손이, 역사를 통과하여 지금 여기 나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감탄하며 고백한 것처럼,
"창세 전에 그 안에서 우리가 선택되었다." 이것이 영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의 뿌리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한복음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