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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과 사람의 한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10.

우리는 흔히 “예언”이라고 하면, 마치 하늘에서 직접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예언자가 그대로 받아서 전달하는 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다 보면, 예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분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시며, 그분의 뜻은 언제나 한 인간의 영혼과 사고, 감정의 틀을 거쳐 나오게 됩니다.

성령께서 영감을 주시지만, 예언자의 인격과 성향, 경험과 지식의 틀 안에서 그 말씀이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맑은 물이 각기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길 때, 물의 본질은 같으나 모양은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모두 같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지만, 그 시선과 강조점은 다릅니다. 마태는 유대인의 시각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오신 메시아”로, 누가는 “인자로 오신 구세주”로, 요한은 “하나님이신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각 저자의 눈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 속으로 들어올 때 일어나는 ‘
신비로운 인간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언어를 입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예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자가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그 사람의 생각과 영적 기질이 전혀 배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성향과 경험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그 말은 이미 인간의
‘해석’을 포함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예언은 언제나 일정 부분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할 때, 그 안에는 자신의 판단이나 감정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자기 견해를 덧붙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예언은 언제나
‘듣는 이의 분별’을 필요로 합니다. 예언이 아무리 감동적으로 들려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정하기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언은 분별하라”(고전 14:29)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설교도 이와 비슷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전하지만, 회중은 각자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어떤 이는 눈물로 회개하고, 어떤 이는 의심하며, 또 어떤 이는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의 본질은 같지만, 듣는 이의 마음 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언도 동일합니다. 전하는 이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고, 듣는 이의 해석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은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대화적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성령께서 듣는 자의 마음에도 감동을 주셔서,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점차 드러나게 됩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은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와 환상이 중심이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보았고, 그 의미를 하나님께 직접 묻고 해석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끓는 가마를 보이셨을 때, 예레미야는 그것이 북쪽을 향하고 있음을 보고 자기 판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환상의 의미를 친히 설명해 주셨습니다(렘 1:13~14).

그러나 신약 시대의 예언은 다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이 모든 믿는 자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행 2:17~18). 신약의 예언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일방적 음성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람의 내면에서 감동으로 주시는 깨달음과 조명입니다.

이 때문에 신약의 예언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성령의 상담자이자 동역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토대로, 듣는 사람과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며, 서로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뜻을 분별해 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어느 한 사람의 독단적 판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듣는 이는 성령 안에서 확인하며, 공동체는 함께 그것을 검증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 학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아침에 아무 준비 없는 사람을 불러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아래서 훈련받았고, 이사야는 궁정의 학자였으며, 예레미야는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언에는 반드시 훈련과 분별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감동은 순수하지만, 그것을 인간이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경험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오래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은, 그 감동을 보다 정확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약시대의 예언은 대부분
‘상담’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누군가의 삶을 향해 하나님의 위로, 격려, 교훈의 말씀이 주어질 때, 그것은 단순히 미래를 점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영혼을 돌보시며 함께하신다는 표징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상담의 자리에서, 예언자와 듣는 사람 모두에게 감동을 주시며, 진리 안에서 일치된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예언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인간에게 단순한 정보를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교제를 새롭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단지 “무엇이 일어날까?”를 궁금해하기보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 순간 예언은 점술이 아니라 복음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며, 그 말씀은 완벽하게 객관적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안에서도 진리를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신비한 일이지만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시되, 사람의 입술을 사용하시며, 그 사람의 성향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언제나 성령의 감동과 인간의 해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긴장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배워야 합니다. 예언의 목적은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예언은 이런 말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노라.” “너는 내 사랑하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니라.” 이 단순한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내 마음에 새겨질 때, 그것이야말로 신약시대의 참된 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