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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말씀 묵상

하늘의 원형을 본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5.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브리서 8:1~7)

히브리서 8장은 이 세상의 것이 하늘 것의 모형이라고 또다시 반복합니다 . 성경은 집요하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예수로 보여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하늘에 올라가 본 원형이 무엇일까요?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을까요? 이 세상도 한 눈에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 나라는 더 엄청날 텐데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성전은 예수요, 교회요, 우리입니다. 성전이 곧 새 예루살렘성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본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통치였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리시고, 피조물은 그 다스리심에 완전히 복종하여, 자기 뜻을 요만큼도 내놓지 못하는 곳. 하나님이 온전히 피조물을 장악하여 하나님의 것으로만 공급하며 살리는 은혜의 나라. 그것이 성전이요 천국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막에서는 양과 소를 죽이고 피를 뿌립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희생으로만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거기서는 제사장과 제물로 성전이 운영되며, 백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막은 바로 이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원한 대제사장이라 부르는 것은 하늘에서도 대제사장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존재는 예수 이외에는 그분의 은혜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당신이 지금 이곳에서, 당신의 상황과 환경, 겪는 모든 사건 속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임을 알고, 그분 때문에 이겨지고 극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요원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점점 이루어져 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죽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려 보내어
'나는 능력 있는 자'라는 착각 속에 살게 하셨다가, 점점 죽여가며 실체로 돌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표피적으로만 이해하면 쉽습니다.
"이렇게 사세요, 저렇게 사세요, 믿음이 이깁니다, 끝까지 이기는 자는 상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법으로 설명하면 설교자도 쉽고 듣는 사람도 만족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외우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설교는 말씀 속에서 예수와 예수의 보혈이 어떻게 숨어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십자가 이외에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전에 배운 모든 것이 다 쓰레기였다는 고백입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인도 선교사로 배가 고파 엉금엉금 기어가 빵을 잡았는데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그래도 털어서 먹어야 했습니다. 배가 고팠으니까요. 만약 그 곰팡이 핀 빵이 진짜 우리가 먹어야 할 복음이라면? 조금만 배가 불렀다면 그는 그것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가 진짜 복음을 붙들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끊임없이 죽어가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화론은 우리 배를 불리라고 가르칩니다.
"넌 괜찮아, 괜찮은 사람이야. 그만큼은 하고 있잖아." 그러나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알아가는 전체 과정이 기도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묵상하며 하는 생각과 말이 다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원과 영생은 우리 안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생물학자가 나비의 고치를 발견했습니다. 나비가 나오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안쓰러워 가위로 고치를 잘라주고 입김을 불어주었습니다. 나비는 금방 나왔지만 결국 날개를 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과정을 생략하면 안 됩니다. 고치 속에서 완전히 죽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까지 가야 합니다. 움직임이 없어져야 합니다.
"이제 완전히 죽었구나" 할 때, 그때 진짜 생명이 나옵니다. 이 역사와 인생은 하나님에 의해 계속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죽는 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더럽습니다. 어떤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인간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와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혼을 비난하며 분노하는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나쁜 죄인가? 성경은 미움을 살인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죄가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료된 우리가, 왜 예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자유입니다.

성도는 자기를 장악하고 있는 어두움 때문에 고통합니다. 죽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과하면서 결국 깨닫습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죽었구나!" 그때 고치가 찢어지며 나비가 됩니다.

당신의 삶, 성경 공부, 예배, 설교, 직장, 무엇을 통해서든 당신은 혼돈과 공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예수를 아는 그 진짜 복을 잘 챙기십시오.

다 겪으십시오. 벗어나게 해달라고 발버둥 쳐도 하나님은 벗어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다 겪게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죽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믿음이 이겨서 당신을 승리자로 만드십니다. 당신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겨서 당신이 이기는 것, 그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