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토끼들이 모여서 두려움에 떨며 사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우리 토끼는 결국 사람이나 개, 독수리, 그리고 다른 동물들의 먹잇감이 아닌가? 이런 공포 속에서 사느니 한꺼번에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 토끼들은 물에 빠져 죽으려고 연못으로 돌진했습니다. 이때 연못 근처에서 웅크리고 있던 개구리들은 토끼들이 달려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가장 앞에 있던 토끼가 말했습니다. "친구들, 멈추시오. 나쁜 짓은 하지 맙시다. 여기에 우리보다 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물이 있소."
물끄러미 위를 올려다보며, 우리는 가끔 생각합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왜 나는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일까?”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 아래를 바라보면, 누군가는 우리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또 누군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간절히 꿈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환경의 절대값이 아니라, 마음의 해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화 속 토끼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명을 버리려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연못가에서 자신들보다 더 쉽게 놀라고 더 약한 개구리들을 본 순간, 그들은 멈춰 섭니다. 이 장면은 마치 거울처럼 인간의 모습을 비춥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며 자책합니다. SNS에서는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떠났고, 누군가는 신차를 샀고, 누군가는 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일상은 점점 초라하고 의미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타인을 바라볼 때, 우리는 진실보다 포장된 환상을 마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위를 쳐다보는 고개는 아프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마음은 교만해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을 통해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마슬로우의 욕구 이론처럼,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우리는 다음 단계의 욕구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 욕구는 끊임없는 비교의식과 함께하기에, 만족은 순간이고 결핍은 영원합니다.
문제는 이 비교가 일방향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위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목은 아프고, 마음은 늘 쓸쓸합니다. 반대로 아래만 보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균형을 잃은 시선은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그리고 각기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사자는 사자의 삶이 있고, 토끼는 토끼의 삶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삶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내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며 낭비하라고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 속에서 피어납니다. 팔 하나 없는 화가가 입으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며 찬송을 부릅니다. 팔다리가 없어도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면, 넓은 집과 좋은 옷, 충분한 재산을 가졌음에도 마음이 공허하여 잠 못 이루는 이들도 있습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삶에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나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내가 비교하는 대상은 누구이며, 그 비교는 공정한가? 나는 주어진 오늘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통해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자리를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피어나기를 원하시고,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은 비교가 아니라 감사의 눈,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의 충실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때때로 위를 바라보며 겸손을 배우고, 때때로 아래를 바라보며 감사의 깊이를 체험하십시오. 그러나 늘 바라보아야 할 곳은 하나님입니다.
주어진 삶을 수용하고, 오늘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당신의 천국입니다. “나는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2)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지금도 우리는 행복할 이유를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선천적으로 사지(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한때는 삶을 포기하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은 절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고통을 '약점'으로만 보기보다,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도구로 삼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자가 되었고, 지금은 결혼도 하고 자녀도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지가 없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삶의 의미를 찾았고, 나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제약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비교의 눈이 아니라,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그의 삶은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닉 부이치치의 삶은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해석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팔과 다리가 없다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가장 불행해 보일 수 있는 조건 속에서도 그는 "내게 주어진 삶의 이유"를 발견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 다만 가끔씩 위를 쳐다보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가끔씩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감을 갖고 나름의 행복을 맛보라...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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