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한 지 이제 겨우 몇 해쯤 된 부부들에게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회사에서 지치고 속상한 일을 겪고 돌아와 무심코 한마디를 던지는 순간입니다. "나 오늘 팀장한테 완전히 깨졌어." 그런데 상대방의 첫 반응이 이렇습니다. "그러게 평소에 보고서 좀 미리미리 하라고 했잖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백 번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남편은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옳은 말이 항상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결혼 생활은 우리에게 조금씩 가르쳐 줍니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편은 외국계 기업의 지점장이었습니다. 실적 압박이 얼마나 심했던지 원형탈모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가족 앞에서는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이니까 버텨야지." 그렇게 혼자 삭이며 살던 어느 날 밤, TV에서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무심코 아내에게 던지듯 말했습니다. "우리도 다 정리하고 시골 내려가서 살까?"
말을 뱉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며 생활비며, 돌아올 대답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애들 크는데 무슨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해요." 그런데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다 같이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강화도는 어때요?" 그 순간 남편은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내가 정말 시골로 이사할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편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그 말 속에 담긴 무게를 아내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대답의 내용보다 중요한 건, "당신 편이에요"라는 그 마음이었습니다.
또 다른 부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기 사업을 하던 남편이 오랫동안 믿었던 동업자에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배신감에 속이 다 뒤집힐 지경이었습니다. 화가 난 채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떤 나쁜 인간이 나를 가지고 놀았어." 보내고 나서 곧바로 후회했습니다. "그러게 사람 함부로 믿지 말랬잖아요"라는 답장이 뻔히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도착한 문자는 이랬습니다. "어떤 미친놈이야? 속 많이 상했겠다. 그래도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먼저 내 편이 되어준 그 한마디가 남편의 마음을 얼마나 든든하게 붙잡아 주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젊은 부부들에게 이 두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결혼이란,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한 세계를 이루어 가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함께 산다고 해서 저절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여전히 남편의 세계에, 아내는 여전히 아내의 세계에 갇혀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배우자의 마음에 맞장구를 쳐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맞장구를 쳐준다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건설적인 야당이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배우자가 정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짚어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다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비판의 칼을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지치고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까지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들면, 그 순간 배우자는 혼자가 됩니다.
젊은 부부일수록 아직 서로에게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낯설고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쁜 아내 옆에 있어서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에, "고마워, 날 예뻐해줘서"라고 대답하는 아내의 그 짧은 대화처럼, 어찌 보면 유치하고 닭살 돋는 그 말 한마디가 부부 사이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사랑은 거창한 이벤트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고 다정한 맞장구들이 쌓여서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배우자가 지친 얼굴로 돌아와 무언가를 털어놓는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봐 주면 어떨까요.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당신 편이야." 그 한마디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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