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외국에서 「남녀의 차이」라는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겠거니 생각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첫 페이지도 백지, 다음 페이지도 백지, 끝까지 넘겨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본인 줄 알고 책을 바꾸어 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여자도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이것이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너무 다른 존재인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 평생을 함께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서로 다른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당신은 나를 알아야 한다”고 기대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어떤 부부가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 두 사람은 참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할 말이 많았습니다.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 친구 이야기,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울 것인지까지 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참 말이 잘 통해.”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피곤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지쳐 있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아내는 물었습니다. “밥 먹을 거예요?” “응.” “밥 차려 놓을게요.” “그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고, 남편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습니다. 아내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집에 네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각자의 세계에서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활이 크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피곤하니까 그렇지." 그러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면서 대화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대화가 줄어드니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오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요즘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남편은 의아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냥… 당신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아.” 남편은 억울했습니다. “내가 매일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다 주잖아. 그게 가족을 위한 거 아니야?”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더 서운해졌습니다. 남편은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둘 다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아내가 당연히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고, 아내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남편이 눈치채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부부싸움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럴 줄 몰랐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말입니다. 왜 몰랐을까요? 상대방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무엇 때문에 서운한지 몰랐고, 아내는 남편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기대했습니다. “당신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야지.”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마음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모든 생각을 자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말해야 합니다.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오늘 하루 아이들 때문에 조금 힘들었어.” “당신이 아침에 해준 말이 참 고마웠어.” “요즘 내가 조금 외로운 것 같아.” “당신과 함께 여행 한번 가고 싶어.” 이런 작은 말들이 관계를 살립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마음의 창문을 조금 여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친구가 재혼했다면서?” “응.” “그 친구는 이혼하고 8년 만에 재혼했다던데… 당신은 나 죽으면 얼마나 있다가 재혼할 것 같아?” 아내는 농담처럼 물었지만 속으로는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남편이 이렇게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무슨 소리야.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줘.” 아마 아내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남편은 장난스럽게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1년씩이나 걸릴 필요가 뭐 있어? 6개월이면 충분하지.” 남편은 웃자고 한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웃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6개월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거야?” 같은 질문 하나가 서로를 웃게 만들 수도 있고,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끝까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기 전에 잘 듣는 사람입니다. 부부가 대화하다 보면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합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나는 오늘 정말 힘들었어.” 그러면 남편은 곧바로 말합니다. “나도 힘들었어. 회사에서 오늘 얼마나 일이 많았는지 알아?” 아내는 다시 말합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오늘…” 남편이 끼어듭니다. “당신만 힘든 줄 알아?” 이렇게 되면 대화는 어느 순간 경쟁이 됩니다. 누가 더 힘든지 겨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는 승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해받았다는 느낌입니다. 아내가 “오늘 정말 힘들었어”라고 말할 때 남편이 꼭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이 힘들었구나.” “오늘 정말 고생했네.” “내가 당신 이야기를 들어줄게.” 이 한마디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낼 때 아내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바라보며 들어준다면 남편은 생각할 것입니다. ‘내 아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엽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저녁 식탁에 네 사람이 앉아 있는데 아무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휴대폰을 봅니다. 어머니도 휴대폰을 봅니다. 아들은 게임을 합니다. 딸은 이어폰을 끼고 있습니다. 밥은 함께 먹지만 마음은 함께 있지 않습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대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사라집니다. “오늘 학교 어땠어?” “그냥.” “회사 어땠어요?” “그냥.” “무슨 일 있었어?” “없어.”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소통을 회복하려면 아주 작은 결단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루에 20분이라도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끄고 휴대폰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오늘 하루 어땠어?” “오늘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뭐였어?” “오늘 가장 감사했던 일은 뭐였어?” “요즘 당신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뭐야?” “내가 당신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게 있어?” 처음에는 어색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을 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번 열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집니다.
소통은 마음만 있다고 저절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전도 배워야 하고, 요리도 배워야 하며, 운동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결혼하면 부부 대화는 저절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화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특히 감정이 상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확대해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편이 “오늘 좀 피곤하네”라고 말했는데 아내가 “당신은 나와 사는 게 지겨운 거지?”라고 받아들이면 대화가 왜곡됩니다. 아내가 “당신이 오늘 조금 무뚝뚝했던 것 같아”라고 말했는데 남편이 “그러니까 내가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다는 거야?”라고 받아들이면 역시 대화는 싸움이 됩니다.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잠시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좋은 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당신은 항상 그래!”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내가 당신하고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은 순간적으로 속은 시원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관계에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속상할수록 먼저 감정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그래?”보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 마음이 많이 서운했어”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을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 말을 안 해요. 아빠 엄마가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저도 아빠랑 거의 말을 안 해요.”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외로운 느낌이 들어요. 우리 가족이지만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 가족 모두 외로운 것 같아요.”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연결되지 않을 때 더 깊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족이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집은 잠을 자는 공간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집은 달라집니다. “오늘 힘들었지?”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당신이 있어서 참 감사해.” “아빠가 너를 믿는다.”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이런 말들이 오가기 시작하면 집 안에 따뜻한 공기가 흐릅니다.
닫힌 집은 오래될수록 공기가 탁해집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창문을 오랫동안 닫아 놓으면 답답해집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서운함을 닫아 놓고, 외로움을 닫아 놓고, 고마움을 닫아 놓고, 사랑을 닫아 놓으면 마음의 공기가 탁해집니다. 그러나 창문을 조금 열면 바람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작은 바람입니다. “오늘 고생했어.” “당신 덕분에 잘 지냈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 작은 말들이 마음의 창문을 여는 첫 바람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이래?”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야 합니다. 대화는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을 여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먼지도 털어내야 하고, 굳어 있던 창틀도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창문을 열면 달라집니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아,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구나.’
부부가 평생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은 집에서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소통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말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당신은 왜 말을 안 해?” 라고 따지기보다 “우리 오늘 조금 이야기할까?” 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 라고 단정하기보다 “내 마음을 조금 이야기해도 될까?” 라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는 문제가 없는 부부가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할 수 있는 부부입니다. 서운함이 생겼을 때 말할 수 있고, 화가 났을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부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입니다.
오늘이라도 좋습니다. 텔레비전을 잠시 끄십시오. 휴대폰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하루 어땠어?” 그 한마디로 시작해 보십시오. 혹은 아주 오래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 보십시오. “당신에게 미안했어.” “당신에게 고마웠어.” “사실 나는 조금 외로웠어.”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어쩌면 그 한마디가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지도 모릅니다.
소통은 사랑의 창문입니다. 창문을 닫아놓으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문을 열면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들어오고, 아름다운 향기가 들어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닫아놓은 채 행복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먼저 창문을 여십시오. 그리고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입니다. 행복한 동행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향해 여는 작은 대화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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