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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낼 줄 아는 기술을 배워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3.

우리는 흔히 분노를 억눌러야 할 감정, 혹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분노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분노 그 자체가 아니라, 천한 방식의 분노, 곧 이성을 잃은 채 폭주하는 분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화를 내지 않는 법”이 아니라, 화를 낼 줄 아는 기술입니다.

어느 회사에 성실한 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업무에 있어서 원칙이 분명했고, 팀원들을 보호하려 애썼습니다. 어느 날, 상부에서 명백히 부당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팀원 한 명에게 책임을 전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팀장의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빨라졌습니다.

이때 그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회의실에서 책상을 치며 상사를 몰아붙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고른 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분노의 존재를 아는가, 모르는가입니다. 천한 분노는 대개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터져 나옵니다. 말은 날카로워지고, 표정은 험악해지며, 이후의 결과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반면 이성 있는 자의 분노는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나는 화가 났다. 이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가?” 분노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분노의 노예가 아니라 관찰자가 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 기술입니다.

두 번째 기술은 예측입니다. “이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면 어떤 결과가 올까?” 만약 그 팀장이 즉각 폭발했다면, 그는 통쾌함을 잠시 느꼈을지 모르지만 곧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낙인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팀원은 보호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반대로 분노를 연료로 삼아 이성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는 조직 안에서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부당함에 맞설 수 있습니다.

분노는 불과 같습니다. 불은 집을 덥히고 음식을 익히지만, 통제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태웁니다. 이성 있는 자는 불을 끄지 않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대신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를 가늠하고, 멈춰야 할 지점을 미리 정해 둡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 등장합니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

사람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멈추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말 한마디가 또 다른 말을 낳고, 표정 하나가 상대의 반격을 부릅니다. 분노는 움직이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분노가 최고조에 이르기 전에 멈춥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나기 전에 속도를 줄이듯 말입니다.

우둔한 자들은 분노 속에서 판단력을 잃습니다. 그들은 “참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말하지만, 실은 참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 그 순간에도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이미 현명한 사람입니다. 다수가 감정에 휩쓸려 있을 때, 홀로 이성을 붙잡고 있는 자는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강한 자입니다.

지나친 열정은 종종 미덕처럼 포장됩니다. “열정적이다”, “솔직하다”, “할 말은 한다.” 그러나 이성이 떠난 열정은 천성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인간의 고유한 존엄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이성을 통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화를 낼 줄 아는 기술이란 결국 이것입니다. 분노를 부정하지 않되, 분노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 것, 화를 느끼되, 그 화가 나를 대신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 기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으로 길러집니다. 매번 분노가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났는가?” “이 화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여기서 멈추면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이성 있는 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