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2188 마음이 켜는 등불 어느 겨울 저녁, 두 사람이 같은 골목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로등은 하나가 꺼져 있었고, 바람은 매섭게 불었습니다. 한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외투 깃을 세웠지만, 얼굴엔 묘한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골목 끝의 그림자가 자꾸 무언가처럼 보였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왠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두 사람이 걷는 길은 같았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세상은 전혀 달랐습니다.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기분이 나쁘면 날씨 탓을 하고, 불안하면 세상이 험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세상은 때로 정말 어둡고, 날씨는 실제로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똑같이 흐린 하늘 아래서도 어떤 사람은 빗소.. 2026. 2. 18. 디도의 일기(20) - 길 위의 의사, 그리고 따라오는 그림자 어떤 소식은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가장 약해진 순간에 찾아옵니다. 바울은 지금 말 위에 있었습니다. 채찍을 세 번 맞은 몸으로 빌립보 성문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형제자매들의 찬송 소리가 조용히 따라왔습니다. 누군가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위로인지 배웅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 경계쯤 어딘가에 있는 노래였습니다.'정말 점잖고 사랑스러운 이들이야. 이런 이들을 알게 된 건 특권이지.' 바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말의 걸음에 몸이 흔들릴 때마다 등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그 생각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직업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의사란 남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정면으로 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상처의 깊이를, 고름의 색깔.. 2026. 2. 18. 디도의 일기(19) - 빌립보의 밤에 상처 입은 몸으로 전하는 말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16:25,40,20:24)어떤 지도자는 강단에서 내려올 때 박수를 받습니다. 또 어떤 지도자는 감옥에서 나올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채찍에 맞은 등이 아직 아물지도 않은 채, 그는 루디아의 집 거실 벽에 기대어 앉으려다 이내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상처가 벽에 닿는 순간 전해지는 통증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첫 마디는 자.. 2026. 2. 18. 가득 채우기보다 비워야 흐른다 어느 해 겨울,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존경해 온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그 선배는 한때 업계에서 손꼽히는 기획자였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얼굴은 낯설게도 편안했습니다. 바쁘다 못해 늘 초조해 보이던 예전 모습과는 달랐습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묻자, 그는 찻잔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요즘은 좀 비우고 살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 그의 책상 위에는 빈 공간이 없었습니다. 기획서, 메모지, 참고 도서, 수첩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달력은 빨간 펜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는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쉬는 날에도 세미나를 들었고, 휴가 중에도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완벽하게 .. 2026. 2. 18.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5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