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님303

척량의 날, 그리고 은혜의 현장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전 9:3~5)이 세상을 바라보며 기뻐할 것이 없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깨어있는 성도의 표징입니다. 세상이 주는 쾌락과 명예, 심지어 이 땅의 종교적 성취들까지도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 없다는 이 실망은, 참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은혜의 첫 증거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의 위안과 성공을 자양분 삼아 살아가는.. 2025. 6. 14.
예수 그리스도와 창조의 뜻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은 성경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장이 물리적 세계의 창조를 말한다면, 요한복음 1장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창조를 선포합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곧 하나님이셨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의 형태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 전에 이미 존재했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셨습니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육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한 한 사람의 출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의 뜻을 보이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은 그 뜻을 살고, 전하며, 성취하는 삶을 사셨습니다.요한은 이어서 말합니다... 2025. 6. 14.
베노니와 베냐민, 그리고 '예수지옥 김밥천국'의 신앙 "그들이 베델을 떠나 에브랏에 아직 채 이르기 전에, 라헬이 몸을 풀게 되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였다. 아이를 낳느라고 산고에 시달리는데, 산파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셔요. 또 아들을 낳으셨어요."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 '내 슬픔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 또는 '남쪽의 아들'. 라헬이 죽으니, 사람들은 그를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다가 묻었다. 야곱이 라헬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웠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묘비가 라헬의 무덤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35:16~20)라헬은 눈부시게 사랑받던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 2025. 6. 14.
부득불,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예수를 전해야 하나요?" "왜 그렇게 눈물로 외쳐야 하나요?" 그러나 성경을 들여다보면, 결코 자발적인 열심이나 인간적인 열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직 '부득불'이라는 단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사명자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예레미야가 그렇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겠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였습니다. 수염을 뽑히고, 뺨을 맞고, 조롱받고, 외면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입을 다물고 살고 싶다고 결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뼛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되어 도무지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또다시, 찢기면서도, 울면서도, “도대체 왜 나만 갖고 그러십니.. 2025.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