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으로 사는 삶263

눈물의 기도 - 예레미야의 마음으로 북한을 품다 2011년 겨울, 탈북 청년 김혁(가명)은 서울의 한 작은 교회 청년부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목소리가 자꾸 떨렸습니다. 두만강을 건너던 날 밤, 함께 강을 건너던 열두 살짜리 남동생이 차가운 물살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손을 놓아야 했습니다. 손을 잡고 있으면 둘 다 죽었을 테니까, 그는 혼자 강을 건넜습니다. 그 뒤로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꿈을 수백 번 꾸었다고 했습니다. 모임에 앉아 있던 청년들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을 확인했고, 누군가는 유튜브를 켰습니다. 김혁의 이야기는 그렇게 그 방 안에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우리는 지금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어느 곳의 소식이든 실시간으로 받아볼.. 2026. 6. 12.
춤추시는 하나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일찍이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자신들의 신을 믿기를 바란다면, 노래를 더 잘 부르고 구원받은 사람들답게 얼굴에 기쁨이 넘쳐야 할 거야. 나는 춤추는 신만 믿을 수 있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그가 남긴 말치고는 묘하게 아름답습니다. 니체는 신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단지 기쁨 없는 종교, 생기 없는 신앙, 무표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쳐 있었던 것 아닐까요? 어쩌면 그는 평생 살아 있는 신을 찾아 헤맸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니체가 그토록 원했던 '춤추는 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성경 안에 계셨습니다.누가복음 15장에는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불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이.. 2026. 6. 11.
숨어 계신 하나님 - 침묵 속에서도 일하시는 분 어떤 게임이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상대방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했던 숨바꼭질을 기억하십니까?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동안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눈을 뜨면 사방이 고요합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어딘가에 있습니다. 담장 뒤에, 나무 그늘 아래, 대문 기둥 옆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게임은 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때때로 이 숨바꼭질을 하는 것과 닮았습니다.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일본 막부는 기독교를 뿌리 뽑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농민 신자들을 코와 입을 꿰어 거꾸로 구덩이에 매달아 천천히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 2026. 6. 11.
가면을 벗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편 139:1~4)인스타그램을 열면 누구나 빛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멋진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누군가는 해외 출장지에서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피드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사실 우리 자신도 그 빛나는 피드의 일부가 되고 싶어 열심히 가면을 다듬어왔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좋은 직장, 그럴듯한 .. 2026.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