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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아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라디아서 4:8~11)

어느 마을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
나를 사랑해 줄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착하게 행동했고, 다른 아이들보다 더 성실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을 입양해 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착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이 생각이 그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부부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
우리가 너를 아들로 삼고 싶구나." 소년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저를요?" "그래. 우리는 오래전부터 너를 지켜보았단다." 그렇게 소년은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집도 생겼고, 아버지도 생겼고, 어머니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입양된 후에도 소년은 여전히 자신을 고아처럼 대했습니다.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마당을 쓸고,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했습니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불안해졌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버리시면 어떡하지?" "더 열심히 해야 해." "더 잘해야 해." "더 인정받아야 해." 그의 삶은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그를 불렀습니다. "
얘야, 왜 아직도 그렇게 사니?"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 사랑받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아버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네가 일을 잘해서 아들로 삼은 것이 아니다." "네가 착해서 아들로 삼은 것도 아니다." "내가 너를 아들로 삼았기 때문에 네가 내 아들인 것이다." 소년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사랑을 얻기 위해 살아왔지 사랑받는 자로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보면서 느낀 답답함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아셨고,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절기를 잘 지켜야 한다." "특정한 날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을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저것을 해야 하나님의 자녀답다." 마치 입양된 아들이 다시 고아원 규칙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미 아들이 되었는데도 아들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나는 새벽기도를 많이 했으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십일조를 했으니까." "봉사를 했으니까." "주일을 잘 지켰으니까." 물론 그런 일들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마음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종이 됩니다. 아들이 아니라 종이 되는 것입니다. 종은 일을 통해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사랑받기 때문에 일합니다. 종은 쫓겨날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집이 이미 완성되었는데 누군가 삽을 들고 와서 기초공사를 다시 하겠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
집이 이미 다 지어졌는데 왜 그러지?" 그런데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종종 그런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더 보태려 합니다.

십자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십자가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기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실패를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 저는 결국 저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저는 늘 제 열심을 내세우고 싶어 합니다." "저는 하나님 없이도 잘해보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수록 사람은 자기 공로를 말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은혜를 말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말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말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의 복음은 결국 이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붙드셨다." "네가 하나님을 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너를 아셨다." "네가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로 삼으셨다." 그래서 성도의 평안은 자신의 열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믿음의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