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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디모데전후서

디모데전서 -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1.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디모데전서 6:17~21)

한 부유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근면하게 일해서 마을에서 가장 넓은 밭을 소유하게 되었고, 곳간마다 곡식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늘 불안했습니다. 밤마다 곳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러 나갔고, 곡식 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웃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
당신은 이미 삼대가 먹어도 남을 만큼 가졌는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십니까?"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아지기 때문이오."

이 이야기 속 농부의 모습은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의 초상과 정확히 겹쳐집니다. 많이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많음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곳간이 가득 찰수록 마음은 더 가난해지고, 재물이 늘어날수록 두려움도 함께 늘어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마무리하며, 바로 이 부분을 짚어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 "
아델로테스"는 문자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뜻합니다. 재물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질 수 있는 것, 환율 하나에, 정책 하나에, 질병 하나에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재물입니다.

한 목회자가 심방을 갔다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평생 알뜰히 저축해서 상가 건물을 마련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그 건물이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되면서 하루아침에 자산 가치가 반토막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목사님, 제가 평생 벽돌 한 장 한 장 쌓듯이 모은 게 이 건물인데, 이게 이렇게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는 거였네요." 그 순간 할머니가 깨달은 것은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재산의 성질이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흔들리는 땅 위에 세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부한 자들에게 "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합니다. 이 표현은 마음이 하늘 높은 곳, 곧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가 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하나님을 앉혀야 할 곳에 자기 자신을 앉히게 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관자라는 착각, 내 미래는 내가 쌓아둔 것으로 충분히 안전하다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곧바로 대조점을 제시합니다. "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세상 부자들이 불확실한 것에 소망을 걸 때, 하나님의 백성은 전혀 다른 분께 소망을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단지 필요한 만큼 주시는 분이 아니라 "후히", 곧 풍성하게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
누리게 하다"라는 단어 "아폴라우시스"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진정한 즐거움과 향유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아끼시는 인색한 분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분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마을에서 사역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아침 자기 오두막 앞에 앉아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
오늘도 숨 쉴 수 있게 하시고, 저 하늘을 보게 하시고, 이웃과 인사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교사는 그 노인에게서 세상 어떤 부자에게서도 보지 못한 참된 만족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노인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이미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누림"의 본질입니다.

바울은 이 풍성함을 받은 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열매를 요구합니다.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히 받았기 때문에, 그다음에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짜내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넘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나눔입니다.

어느 교회의 한 성도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업이 크게 어려워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형편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
당신도 어려운데 왜 남을 돕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가진 돈은 줄었지만, 제가 받은 은혜는 줄지 않았습니다. 저는 돈이 아니라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참된 부요함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눔은 통장 잔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받은 은혜의 저장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19절에서 이렇게 나누어 주는 삶이 "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쌓아"라는 단어는 창고에 저장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세상은 돈을 은행에 저장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선한 행위를 통해 하늘에 참된 생명을 저장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비바람이 몰아쳤을 때 그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반석 위의 집은 흔들리지 않았고, 모래 위의 집은 무너졌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불확실한 재물 위에 인생을 세운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터 위에 인생을 세운 사람의 차이는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폭풍이 몰아칠 때, 곧 질병이나 죽음이나 상실 앞에 섰을 때,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당부합니다. "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여기서 "부탁한 것"은 헬라어로 "파라데케", 곧 맡겨진 신탁물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입니다.

은행에 귀중품을 맡긴 사람은 그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맡은 자의 책임은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다가, 때가 되면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디모데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넘겨주어야 할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우리가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세상의 논리와 타협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보다 먼저 계셨던 이들이 목숨 걸고 지켜서 우리에게 넘겨준 것이며, 우리 역시 다음 세대에게 순전하게 넘겨주어야 할 신탁물입니다.

바울은 편지의 마지막을 "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말로 마칩니다. 그가 쓴 거의 모든 편지가 이 말로 끝납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인사말이 아닙니다. 비방자요 박해자였던 자신이 긍휼을 입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
당신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흔들리는 곳간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입니까? 참된 부요함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소망을 두었는가로 결정됩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해 모든 것을 후히 베푸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누림을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