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디모데전서 5:9~16)
어느 시골 마을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습니다. 그 물은 맑고 시원했습니다.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았고, 누구든지 목마르면 와서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점점 우물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이 우물까지 오는 것이 귀찮아. 다른 곳에 더 편한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우물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 그들은 각자 새로운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물은 점점 탁해졌고 결국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갈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오래된 우물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물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물이 주는 물을 마셨고, 그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들이 오면 말했습니다. "이리 오세요. 여기 물이 있습니다." "제가 만든 물이 아닙니다." "제가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물을 마시면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참 과부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과부는 남편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단순한 신분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참 과부는 세상이라는 옛 남편과 결별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남편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도 없습니다. 자랑할 공로도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입에서는 늘 복음이 나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말합니다. 방황하는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말합니다. 억눌린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말합니다. 그가 하는 모든 선한 일의 근원은 자기 열심이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마치 우물 곁에 서서 물을 나누어 주는 사람과 같습니다. 물을 만든 적은 없지만 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우물로 인도합니다.
반면 바울은 젊은 과부를 말합니다. 이것은 나이가 적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면서 교회인 척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지 못했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과 결혼해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성공이 중요하고, 예수님보다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님보다 자기 의가 중요합니다.
마치 우물을 버리고 스스로 물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드는 물은 결국 마릅니다. 자기 열심도 마르고, 자기 의도 마르고, 자기 자랑도 마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것을 찾아다닙니다.
바울은 그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수다를 떨러 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특별한 지식, 신비한 체험, 인간의 노력, 율법적 행위를 강조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성공 비결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보다 축복의 기술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보다 인간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 물 대신 빈 컵만 주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 원인을 한마디로 설명합니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처음 믿음은 단순히 신앙생활 초창기의 열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처음 믿음이신 예수님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조직도 아닙니다. 교회의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종교적 활동이 많아도 교회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마치 우물은 버리고 우물가만 붙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젊은 과부들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집을 다스리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 역시 단순한 결혼 권장 정책이 아닙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남편으로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자녀를 낳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진리로 세워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세상의 비방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참 과부입니까? 아니면 젊은 과부입니까?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만을 남편으로 삼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과 결혼한 채 교회 안에 머물고 있습니까? 내 입에서는 복음이 흘러나옵니까? 아니면 사람의 말과 세상의 지혜만 흘러나옵니까? 참 과부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남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참 교회는 사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디모데전서 5장의 과부 이야기는 결국 교회가 누구를 말하고 누구를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오직 처음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의 은혜만을 전하는 하나님의 집이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목마른 영혼들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잃어버린 자들은 참된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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