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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디모데전서

디모데전서 - 하나님의 집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22.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디모데전서 3:14~16)

어느 지방 중소 도시에 자리 잡은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랫동안 신실하게 봉사해 온 집사 한 분이 드디어 안수집사 임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직식을 앞두고 담당 장로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습니다.
"집사님, 이번에 임직하시면 관례상 일정 금액을 헌금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당혹스러웠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빚을 내어 헌금을 채웠고, 임직식 날 환하게 웃으며 단에 섰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우리 주변 어디선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분은 언제부터인가 교회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도구가 되었고, 때로는 헌신의 표시로 일정한 재정적 부담을 요구하는 관행과 결부되었습니다. 물론 직분자를 세우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교회를 향해 감독과 집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 가르침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조직을 탄탄히 구축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이렇게 씁니다.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딤전 3:14~15) 그가 쓴다고 표현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단순히 가지 못하니 편지로 대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이 편지를 보내고, 가능한 한 속히 가서 직접 얼굴을 보고 함께 진리를 나누겠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에베소교회의 상황이 긴박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스스로 감독과 집사 행세를 하며 다른 교훈을 퍼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
하나님의 집"은 건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별도의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집을 단순한 건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된 자들이 함께 거하는 공간, 곧 살아 있는 유기체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교회는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
행하여야"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나스트레포'인데, '위를 향해 돌이키다', '뒤집어 엎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안에서 일어나야 할 일은 그런 것입니다. 땅의 논리가 하늘의 논리로 뒤집히는 것, 육의 질서가 영의 질서로 전복되는 것, 그것이 교회 안에서 벌어져야 하는 사건입니다.

어느 대학교수가 오랫동안 무신론자로 살다가 뒤늦게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기대한 것은 어떤 종교적 위안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난 것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 온 모든 것이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자가 인정받는 세상의 논리가, 약한 자가 오히려 강하다는 복음의 역설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은 게 아니라, 뒤집어졌습니다." 그것이 '아나스트레포'가 일어나는 자리, 곧 하나님의 집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선언합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공동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현장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에 죽은 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분의 부활 생명으로 살아난 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둥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고, 터는 기둥이 서 있도록 단단히 받쳐주는 기초입니다. 다른 교훈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어와도,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에 견고히 서 있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 집은 화려한 외형이나 안정적인 조직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기둥이요 기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말 대신, 이 놀라운 고백을 터뜨립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 헬라어 '유세베이아', 곧 경건은 종교적 도덕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밀"이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우리는 경건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것, 십일조를 성실히 드리는 것,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
크도다!"라고 탄성을 내지르며 가리킨 경건의 비밀은 그런 외적 실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사건, 성령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신 그 사건, 온 세상에 전파되고 믿어지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신 그 사건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고, 그것을 아는 것이 경건의 비밀입니다.

바울이 이 고백을 열거하면서 모두 수동태로 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나타난 바 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보이시고, 전파되시고, 믿은 바 되시고, 올려지셨느니라." 주어는 인간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그 하나님의 일을 함께 고백하는 곳입니다.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라는 표현의 헬라어 원어는 '하나의 말씀으로 함께 화답한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같은 진리를 함께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중소도시 교회의 집사님이 짊어진 부담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직분이라는 형식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논리, 곧 직분자가 살아서 움직여야 교회도 살아 있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목사가, 장로가, 집사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살려주시는 은혜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로 드러나는 것이 진정한 교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조직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세워집니다. 그 집은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그 경건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고백하는 자들이 있다면, 거기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거기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