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말씀 묵상/디모데전서

디모데전서 - 초대교회 집사의 참된 의미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14.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디모데전서 3:12~13)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랫동안 안수집사로 섬겨온 한 형제가 담임목사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십 년 넘게 집사 직분을 맡았는데, 솔직히 제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헌금을 세고, 주차를 안내하고, 교회 건물을 관리했습니다. 누가 봐도 성실한 집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옳았습니다. 집사란 과연 무엇입니까?

바울은 8절을
"이와 같이 집사들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는 앞서 다룬 감독의 자질과 집사의 자질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의 사다리가 아닙니다. 감독이 위에 있고 집사가 아래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
집사"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본래 '식사의 시중을 드는 사람,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을 뜻합니다. 영어 'deacon'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훨씬 넓게 쓰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고후 3:6), "복음의 일꾼"(골 1:23),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딤전 4:6)처럼, 이 단어는 언제나 말씀과 복음을 섬기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결국 집사란 문자적으로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이지만, 성경적으로는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사람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섬기는 자입니다.

사도행전 6장이 그 실례입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사도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그리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제"로 번역된 말이 '디아코니아', 곧 봉사·섬김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세운 일곱은 단순히 식량을 나르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곱 중 스데반은 곧 말씀으로 온 공회 앞에서 담대히 증언하다 순교했고,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며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식탁 봉사자인 동시에 말씀의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이 열거하는 집사의 조건들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능력의 목록이 아니라 말씀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성품의 목록입니다. "
정중하고"로 번역된 '셈노스'는 경배·헌신을 뜻하는 '세보마이'에서 나왔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의 '딜로고스'는 '두 번 말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신 것을 다시 사람의 계명과 교훈으로 뒤섞어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는 직역하면 '많은 포도주에 전념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누룩이 든 말씀, 곧 사람의 교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는 율법을 지켜 영생을 얻으려는 자기 의의 탐욕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육체의 일"(갈 5:19)이 곧 더러운 것입니다.

9절의 "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구절은 이 모든 조건의 핵심을 압축합니다. 믿음을 많은 사람이 강한 의지나 종교적 신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비밀입니다. 이 비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깨끗한 양심, 즉 하늘의 것으로 함께 보는 시각으로 붙드는 자가 바로 집사의 참모습입니다.

10절은 말합니다.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시험하여"의 '도키마조'는 불 속에서 금속을 제련해 그 순도를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아넹클레토스'는 흠 없는 상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것으로 증명되었을 때, 그 사람을 섬기게 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의 원문은 단순히 '섬기게 하라, 봉사하게 하라'는 동사입니다. 조직의 직책을 부여한다는 의미보다 말씀의 시중드는 자리에 세운다는 뜻이 훨씬 강합니다.

11절의 "
여자들도 이와 같이"라는 구절은 집사의 아내를 가리킨다는 견해와 여자 집사를 가리킨다는 견해로 나뉩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직분을 맡겼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 혼자의 일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는 조건은 온 교회가 함께 점검해야 할 기준입니다.

"
모함"으로 번역된 '디아볼로스'는 마귀·사탄·대적자라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대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보아야 힓니다. "절제하며"의 '네팔레오스'는 술 취하지 않고 정신 차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품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직분자를 세웠다고 교회가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진리 안에 서 있는지 서로 확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13절은 원문에 '
호티(왜냐하면)'로 시작합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지위"로 번역된 '바드모스'는 본래 계단이나 문지방,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경계를 뜻합니다. "담력"의 '팔레시아'는 밝히 드러냄, 솔직함, 확신입니다. 말씀의 시중을 선하게 드린 자는 아름다운 구분된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것은 계급의 상승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자리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감독은 목사라는 성직으로 탈바꿈하여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되었고, 집사는 목사를 보조하는 허드렛일꾼으로 전락했습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점점 뒤로 밀려나고, 직분은 계급이 되었습니다.

서두에서 물었던 그 집사 형제의 질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가 오래도록 해온 일들, 헌금을 세고 주차를 안내하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말씀의 시중이 아니라 그저 조직의 관리였을 뿐입니다.

집사란 자격을 갖춘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은 어떤 자격도 스스로 주장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자리를 채우십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로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그가 교회요 성도로서 감독이며 집사입니다. 직분이 사라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