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7장 22~27절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24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다른 데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는 말지니라
25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26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27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몇 해 전, 한 사람이 오랜 심장병 끝에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낯선 이의 심장이 그의 가슴 속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 그는 두 번째 삶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점점 그 심장을 "내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죽었기에 자신이 살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심장이 원래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자신은 오직 받은 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잊어갔습니다. 그의 삶은 감사가 아니라 다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레위기 7장 22절에서 27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상한 명령을 하나 내리십니다.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그것도 그냥 권고가 아닙니다. 이 명령을 어기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는 무서운 경고가 뒤따릅니다. 부정한 사람이든 정결한 사람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도대체 기름과 피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엄중한 것일까요?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 현장을 상상해 보십시오. 짐승이 제단에 바쳐질 때, 가장 좋은 부위인 기름은 통째로 태워져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습니다. 피는 제단 사방에 뿌려지거나 발라져, 죄를 속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름은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었고, 피는 생명 그 자체, 곧 속죄의 유일한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기름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을 위해 구별된 것을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써버리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예배와 제사의 목적을 뒤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원래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어야 하는데, 사람이 그것을 자기 유익과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기름과 피를 먹는 죄의 본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뜨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먼 옛날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용돈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아들은 용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냥 도와줄 수 없겠니" 하고 물으면, 아들은 "그럼 저는 뭘 얻는데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관계는 어느새 거래로 변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신앙을 갖고 살아갑니다. 기도하면 응답받기 위해서, 헌금하면 복 받기 위해서, 예배드리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물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응답하시고 복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목적이 뒤바뀌는 데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가 되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정확히 기름과 피를 먹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제사와 구원은 결코 우리의 배부름이나 세상적 형통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얻는 유익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을 어기면 왜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일까요?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추방된다는 사회적 제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참된 언약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자리, 곧 하늘 백성의 명부에서 제외된다는 뜻입니다. 자기중심적 신앙은 단지 미성숙한 신앙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언약 밖에 서 있는 신앙일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 기름과 피의 의미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창세기 최초의 제사,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기름"이 언급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벨이 드린 기름은, 그가 본래 죄인의 후손, 곧 죽어 마땅한 자였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따로 구별되어 거룩하게 여겨졌음을 상징합니다. 아벨은 스스로 거룩해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제물의 피, 곧 생명을 대신 내어준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름과 피의 관계를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기름이 "구별", 곧 거룩하게 됨을 뜻한다면, 피는 그 거룩함의 근거입니다.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자기 노력이나 정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대신 흘려진 피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아벨의 제사는 장차 오실 참된 어린양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이스라엘, 진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혈통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혹은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교회에 오래 다니고,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많이 하면 진짜 신자가 아닐까?" 그러나 본문은 단호하게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혈통도, 겉모습도, 종교적 열심도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회사의 진정한 일원인 것은 아닙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그 계약의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진짜 그 회사에 속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종교적 열심이 뛰어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이 없다면, 그는 여전히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보기에 초라하고 부족해 보여도, 그리스도의 피 안에 있는 사람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별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은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요한일서 2:27). 구약 시대에는 기름부음이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 같은 특별한 직분자에게만 임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 이 기름부음은 예수의 피로 구별된 모든 성도에게 임합니다. 더 이상 특별한 소수의 몫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심장 이식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것이 아닌 심장으로 살아가듯이,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닌 거룩함으로 살아갑니다. 그 거룩함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다른 이가 대신 죽음으로 우리에게 건네진 선물입니다. 심장 이식 환자가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 그의 삶은 다시 자기중심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잊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 나의 유익과 나의 만족을 위한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정확히 기름과 피를 먹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레위기의 이 짧은 규례는 결국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나의 배부름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나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그분을 위해서입니까? 참된 성도의 삶은 자신의 공로나 행위를 자랑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 같은 죄인을 십자가의 피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감사하며, 그 은혜를 증거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는 이 오래된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신앙이 다시 나를 위한 것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오직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피 앞에 날마다 다시 서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약 말씀 묵상 > 레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레위기 - 부정한 것을 향한 거룩한 고집 (0) | 2026.09.10 |
|---|---|
| 레위기 - 화목제물의 규례, 화목제물이 가르쳐주는 은혜의 셈법 (0) | 2026.09.02 |
| 레위기 - 오직 피 오직 은혜, 속건제가 말하는 십자가 (0) | 2026.09.01 |
| 레위기 - 질그릇의 고백, 속죄제 규례, 거룩을 다시 배우다 (0) | 2026.08.25 |
| 레위기 - 태우는 것과 먹는 것 사이, 제사장의 소재 (0) | 2026.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