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10장 1~7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대개 이렇게 답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는 분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의 하나님은 화를 내시지 않고, 누군가를 쓰러뜨리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과는 아주 멀리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노아 시대에는 홍수가 세상을 덮었고,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무너졌습니다. 애굽의 군대는 홍해에 잠겼고, 가나안의 족속들은 진멸당했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다가, 브올의 우상 앞에서 음행하다가 수많은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성경은 이 일들을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만 있고 심판은 한 줌도 없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듣기 편하게 빚어낸 우상, 곧 가짜 하나님일 수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알려면 불편한 장면 앞에서도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레위기 10장은 그 불편함의 한가운데 서 있는 본문입니다.
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순간이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고, 모세가 일러 준 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졌습니다. 7일간의 위임식이 끝나고 첫 제사가 드려지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불이 나와 제단 위의 제물을 사릅니다. 백성은 이 광경을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습니다.
그 감격이 채 가시기 전에 일이 벌어집니다. 아론의 맏아들 나답과 둘째 아비우가 각자 향로를 들고 나아갔습니다. 향로에 불을 담고 향을 얹어 여호와 앞에 올렸는데, 성경은 이 불을 "다른 불"이라 부르며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두 사람을 삼켜 버렸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
처음 읽는 사람은 어리둥절합니다. 이제 막 제사장이 된 청년들이 아닙니까? 열심히 예배하려고 했을 뿐인데, 불이 조금 달랐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다니 너무하다 싶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이럴 리 없다"는 마음속 목소리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잠시 내려놓고, 이 불이 무엇이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성막 마당에는 제단이 있었고, 그 위의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습니다. 이 불은 따뜻하게 몸을 녹이는 불이 아닙니다. 짐승이 그 위에서 죽었습니다. 제단의 불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 주는 불이었습니다. 그러니 제단 앞에 선다는 것은 이런 고백을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 불 아래서 죽어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 대신 이 짐승이 죽습니다." 제단에는 인간의 행복도, 공로도, 자랑도 올라갈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죽음과 피, 그리고 그 피로 말미암는 용서만 있습니다.
이제 나답과 아비우가 가져온 "다른 불"의 뜻이 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단의 불 대신 자기가 마련한 불을 가져왔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태도입니다. "저는 이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이만큼 헌신했고 이만큼 준비했습니다. 이 정도면 받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자기 행함, 자기 열심, 자기 만족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다른 불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신 까닭은 그들의 불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할 자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심지어 공로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두 세계를 나누어 보여 줍니다. 하나는 회막 안의 세계입니다. 이곳은 제사의 세계입니다. 사람이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진노의 자식임을 인정하는 곳이고, 그렇기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피로 얻는 용서뿐인 곳입니다. 이곳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다만 살려 주신 은혜를 찬송할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회막 밖의 세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를 죽은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행함과 공로를 일으켜 세워 인정받으려 합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그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이만큼 했다"가 살아 있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큰 빚을 진 사람이 있습니다. 갚을 길이 전혀 없는 처지인데, 채권자를 찾아가서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며 "제가 이만큼 모았습니다. 이걸로 되겠지요?" 하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채권자가 바라는 것은 그 동전이 아닙니다. 자기가 갚을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마음이고, 그 빚을 대신 갚아 주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불은 바로 그 동전 몇 개와 같습니다.
이 본문과 이어지는 말씀에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성경이 "술 취하지 말라"고 할 때 단지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만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술에 취하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잊어버립니다. 질서가 무너지고 제정신을 잃습니다.
영적으로 술 취한 상태도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진짜 자리, 곧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자리를 잊고 제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죽음은 잊은 채 자기 공로만 앞세우는 사람, 그가 영적으로 취해 방탕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맨정신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나는 죽은 자이고 오직 은혜로 사는 자임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그다음입니다. 형제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집에서 모세는 아론과 남은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머리를 풀지 말고 옷을 찢지 말라고 말입니다.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니요.
그러나 이 명령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들이 슬퍼하며 통곡하는 순간, 마음은 회막 밖으로 나가 죽은 자의 세계, 곧 자기 열심과 인간적인 정에 매인 세계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사람들이 회막 안, 곧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 머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일은 인정사정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을 지키시려는 엄정한 조치였습니다. 회막 문을 나서지 말고 그 안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가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교회는 혈연으로 맺어진 모임이 아닙니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모두 죽어 마땅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나서 이룬 새로운 가족입니다. 아론에게 아들은 소중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들이든 아버지든 죽어야 할 자라는 사실이 같았습니다. 같은 은혜로 살려 주셨다는 사실이 이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끝까지 자기를 지키려 하고, 끝까지 자기 공로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낮아지려 해도 그 낮아짐을 또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쌓아 올린 의를 사정없이 무너뜨리십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 나는 이만큼 했다는 자부심이 하나씩 깨집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곧 죄 때문에 죽은 자로 낱낱이 드러내십니다. 이 일은 아픕니다. 마치 폭력처럼 느껴질 만큼 아픕니다. 나답과 아비우에게 임한 불이 그들을 삼켰듯이, 성령은 우리 안의 자기 의를 삼키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우는 불에 삼켜져 죽었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다릅니다. 우리의 자기 의를 죽이시고 우리 자신은 살리십니다. 이유는 십자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우리 위에 떨어져야 했는데, 그 불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했던 죽음을 그분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아프게 깨우치실 때, 우리는 무너진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피 때문에 삽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죄를 못 본 척하는 값싼 사랑이 아닙니다. 죄를 진지하게 다루시되, 그 값을 아들에게 치르게 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니 진노가 없는 사랑이 아니라, 진노를 통과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화려한 제사도, 열심 있는 헌신도 아닙니다. 내가 죽은 자임을 인정하고, 오직 은혜만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다른 불을 들고 나아가던 우리가 제단의 불, 곧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 마음에는 작은 불이 하나쯤 타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래 믿었다는 자랑, 많이 섬겼다는 뿌듯함, 남보다 낫다는 안도감 같은 불입니다. 그 불을 슬며시 내려놓고 회막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곳에는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의 피가 있습니다. 그 은혜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맨정신으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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