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7장 35~36절
35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36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시골 마을에 평생 성실하게 농사를 짓던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늙어서까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살았지만, 어느 해 가뭄이 들자 그해 농사는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평생 흘린 땀과 수고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내가 평생 이 땅에 쏟은 것이 얼마인데,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이 노인의 탄식은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소득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통장의 잔고도, 손에 쥔 명예도, 몸이 건강할 때 누리던 힘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사라집니다.
그런데 레위기 7장 35절과 36절은 전혀 다른 종류의 소득을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한 날부터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표현을 너무 쉽게 지나칩니다. 마치 옛사람들이 즐겨 쓰던 관용적 수사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막의 제사 규례 한복판에서 굳이 "영원히"라는 단어를 새겨 넣으신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세상의 소득과 하나님이 주시는 소득은 근본부터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일은 한계가 있고 언젠가 끝나지만,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소득은 하늘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배부름입니다.
구약에서 이 영원한 소득을 받은 사람은 아론의 자손들, 곧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봐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를 향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선언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을 고백합니다. 아론의 혈통을 따라 좁게 이어지던 제사장 직분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로 확장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7장의 이 말씀은 3천 년 전 아론의 아들들에게만 해당하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우리 역시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주신 구체적인 소득은 무엇이었을까요? 화목제물을 드릴 때, 제물의 대부분은 하나님께 불살라 드리거나 제사를 드린 사람이 가져가지만, 두 부위만큼은 특별히 제사장의 몫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요제로 드린 가슴과, 거제로 드린 오른쪽 뒷다리입니다. 왜 하필 이 두 부위였을까요? 우연히 정해진 규정이 아닙니다. 이 두 부위에는 각각 깊은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가슴을 생각해 보십시오. 출애굽기 28장을 보면,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슴에 판결 흉패라는 것을 붙입니다. 그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두 개의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 우림은 '빛'을, 둠밈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을 상징합니다. 빛과 완전함이라는 잣대 앞에 서면,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빛 앞에서 우리의 모든 어둠이 드러나고, 완전함이라는 기준 앞에서 우리의 모든 흠과 죄가 낱낱이 폭로될 뿐입니다. 판결 흉패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 판결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우리는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열심과 공로가 아무리 쌓여도 결코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나는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그러나 판결 흉패 앞에서,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는 그런 자기 변호가 설 자리를 잃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공로를 잘라내고, 우리가 본래 저주받을 죄인이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심판대입니다. 가슴 부위가 제사장의 소득이 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된 제사장, 참된 성도는 자신이 판결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른쪽 뒷다리는 무엇을 말할까요? 성경에서 '오른손' 혹은 '오른쪽'이라는 단어는 반복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 15장 6절은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라고 노래하고, 시편 118편 15~16절 역시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라고 고백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오른손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뒷다리'일까요? 뒷다리는 짐승이 자기 몸을 지탱하고 버티는 힘을 의미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두 발로 서서 버티는 힘과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버팀의 힘이 오른쪽, 곧 하나님의 권능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가 인생의 풍파 속에서, 시험과 유혹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결코 우리 자신의 의지나 열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다리가 후들거리는 사람이 자기 힘만으로는 결코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결심과 노력만으로는 신앙의 자리에 굳게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곧 하나님의 권능만이 우리를 붙들어 세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한 것도 바로 이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 이 두 부위가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으로 지정된 것에는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공로는 완전히 부인되어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붙들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을 나만의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나는 새벽기도를 몇 년째 빠지지 않았다", "나는 십일조를 정확히 드린다", "나는 남들보다 봉사를 많이 한다"는 식으로 자기 열심을 신앙의 척도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사실 판결 흉패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정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안심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모든 공로가 완전히 부인되어야 합니다. 마치 다리에 힘이 풀린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서려고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들여야 하듯이, 우리는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지탱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오른손, 곧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제로 받은 영원한 소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마땅히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의인들의 장막에 함께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영원한 소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그분의 은혜 자체가 우리의 몫이요 유업입니다.
세상의 소득은 통장에 찍히지만 언젠가는 그 숫자마저 의미를 잃는 날이 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소득은 하늘에 쌓여 있어서 좀먹거나 동록이 슬지 않으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지도 못합니다(마 6:20).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조건이나 소득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늘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 주는지에 자신의 정체성을 걸지 않습니다.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득과 생명을 이미 소유한 자로서, 날마다 감사와 찬송, 곧 구원의 소리를 부르며 살아갑니다.
그 시골 노인의 탄식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평생 쏟은 것이 얼마인데, 남는 것이 없구나."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전혀 다른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다 사라져도, 내게 주어진 이 소득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소득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의 참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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