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8장 30~36절
"모세가 관유와 제단 위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내게 이미 명령하시기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 곳에서 먹고, 고기와 떡의 나머지는 불사를지며, 위임식은 이레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끝나는 날까지 이레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오늘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게 하시려고 명령하신 것이니,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머물면서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니라."
어느 시골 교회 주일학교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피'는 무슨 뜻일까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용서요! 그리고 생명이요!" 선생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참 뒤에야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맞아. 그런데 말이야, 피가 흘려지려면 누군가 죽어야 해." 레위기 8장 30절은 이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모세는 제단 위의 기름과 피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렸습니다.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얀 옷에 붉은 피가 튀었습니다. 그것을 본 아론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영광스러운 취임식 자리인 줄 알았는데, 옷에는 죽은 짐승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피'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씁니다. 은혜, 용서, 생명,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 밑바닥에는 "죽음"이 깔려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말합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 "정녕 죽으리라" 하셨고, 인간은 그날 이미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숨은 쉬고 밥은 먹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피를 말하려면 먼저 우리가 죽은 자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뒤, 하나님은 노아에게 짐승의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못 박으셨습니다.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라." 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피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생명은 사람이 마음대로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고, 구원을 위해 쓰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오해가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내가 그만큼 귀한 존재라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은근히 '나'가 중심에 서 있습니다.
성경은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죽은 자라서 필요했던 피입니다.
모세는 피만 아니라 관유도 뿌렸습니다. 이 기름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만든 향기로운 기름입니다. 성막에도, 제단에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마다 발라졌습니다. 이 기름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칠순 잔치를 앞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 드리겠다고 했는데, 정작 할머니의 눈길을 끈 것은 막내 손주가 어린이집에서 그려 온 삐뚤빼뚤한 그림이었습니다. 사람 얼굴인지 감자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그림을 안방 벽면 한가운데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뒤집어 봅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장 정성스러운 헌신은 그 손주의 그림만도 못합니다. 그림은 사랑스럽기라도 합니다. 우리의 열심은 자랑이 섞여 있어서 향기가 아니라 악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기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조제하신 기름을 바르십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 주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간증이 자기 자랑으로 흘러가는 순간, 우리는 제사장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위임식에는 광주리 하나가 놓였습니다. 그 안에 무교병이 담겨 있었습니다. 같은 밀가루로 만들었어도 기름을 섞어 만든 것, 기름을 바른 것, 얇게 구운 것, 맛이 제각각이었을 것입니다. 잔칫집에 가면 갖가지 전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옵니다. 동그랑땡, 호박전, 생선전, 서로 모양도 맛도 다르지만 한 접시에 있으니 한 상입니다. 광주리 속 떡도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를 한 광주리에 담은 것은 우리 쪽의 노력이 아닙니다. 흘려진 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흔히 다른 것으로 뭉치려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가 몇 명이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부흥했다", "저 집사님 믿음은 정말 크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믿음의 크기를 서로 견주게 됩니다. 이것은 단합이 아니라 서로의 자랑을 전시하는 일입니다. 진짜 공동체는 전혀 다른 말로 시작됩니다.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 고백 위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서로의 신앙이 아니라 서로의 죽음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피로 살아난 것을 함께 고백하는 자리. 그곳이 교회입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명령이 나옵니다. "칠 주야를 회막 문에 머물면서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칠 일입니다. 낮과 밤이 일곱 번 지나도록 문 앞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론과 아들들은 속으로 물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뭘 지키라는 것일까? 무슨 대단한 일을 해야 하나?" 그런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일은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제물이 죽고, 피가 흘려지고, 연기가 올라갑니다. 그들이 할 일은 문 앞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술실 안에서는 의사가 모든 일을 합니다. 가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복도를 떠나 집에 가서 쉬거나 장을 보러 가지는 않습니다. 복도 의자에 앉아 문이 열리기만 기다립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족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전부'가 때로는 가장 힘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막 문에 머문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 손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 내가 뭔가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교회를 멋지게 키우고, 내 열심과 믿음을 사람들 앞에 보이고, 내 힘으로 하나님께 무언가 드리겠다는 마음입니다. 선하고 부지런해 보이지만, 성경은 그것을 사망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8장의 이 장면은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모입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 그리고 안에서 죽어 가는 제물입니다. 그 제물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우리는 압니다. 훗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가 옷에 튄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는 선한 것이 없고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문을 떠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주님의 피와 은혜만 바라보고, 그것만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은 무언가를 열심히 이루어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아닙니다. 내 믿음을 증명하는 일도 아닙니다. 다 이루신 분 앞에서 문을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 그것이 사망을 면하는 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내려놓고, 안에서 이루어진 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고백합니다. "나는 죽을 자였으나, 주의 피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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