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8장 22~29절, 현대인의 성경.
"모세는 그 위임식을 위해서 또 다른 한 마리의 수양을 끌고 와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머리에 손을 얹게 한 후에
그것을 잡고 그 피를 찍어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랐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나머지 피는 단 주변에 뿌렸다. 그런 다음 그는 그 제물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떼어내고 오른쪽 뒷다리를 잘라내어 여호와 앞에 바친 빵 광주리에서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 한 개와 기름 섞은 빵 한 개와 얇게 구운 과자 하나를 집어내어 그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제단 앞에서 흔들어 여호와께 바치게 하였다. 그런 다음 모세는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다시 받아 번제물과 함께 단에서 불로 태워 여호와께 바쳤다. 이것은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향기로운 위임식 제사이며 불로 태워 바친 화제였다. 또 모세는 그 위임식 수양의 가슴을 들고 제단 앞에서 흔들어 여호와께 바친 다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자기 몫으로 삼았다."
오래된 앨범을 넘기다 보면 이상한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쓰고 환하게 웃는 아이 뒤에서, 아이보다 더 지쳐 보이는 어머니가 서 있는 사진입니다. 아이는 졸업장을 받았지만, 그 졸업장 뒤에는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고 밤마다 등록금을 걱정하던 누군가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날의 주인공이 아이라고 말하지만, 그 영광은 사실 아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8장은 바로 그런 사진 한 장을 보여 줍니다.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영광스러운 날, 그런데 그날의 주인공은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참 특이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같은 핏줄이나 같은 땅,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내가 너를 택했다"고 하신 한마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스스로 만든 나라가 아니라 불러서 세우신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미리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이 가장 아프게 보여 주는 장면이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이유를 우리는 쉽게 "도덕적으로 타락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다기보다 하나님을 자기 방식으로 섬기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두고 자기가 보기에 좋은 길로 갔습니다. 열심은 있었지만 방향이 틀렸습니다.
내비게이션 없이 자기 감으로 운전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악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열심히, 빠르게 달립니다. 그런데 그 길 끝에 목적지가 없습니다. 열심이 방향을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레위기 8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위임식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놀라운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사장 후보들이 직접 한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몸을 씻기는 사람도 모세였습니다. 속옷을 입히고 띠를 매어 주고 관을 씌우는 사람도 모세였습니다. 제물을 잡고 피를 받아 바르고 제단에 올리는 사람도 모세였습니다. 아론과 아들들이 한 일은 딱 하나, 제물로 드려질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은 것, 곧 안수였습니다.
수술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환자가 한 일이라고는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하고 몸을 맡긴 것뿐입니다. 메스를 드는 것도, 병든 부위를 도려내는 것도, 꿰매는 것도 모두 의사의 몫입니다. 환자가 "제가 좀 도울까요?" 하며 일어난다면 수술은 오히려 망가집니다. 제사장 위임식은 그런 자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 스스로를 깨끗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의식 전체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정결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맡기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모세는 제물로 잡은 위임 숫양의 피를 받아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에 바릅니다. 아들들에게도 똑같이 합니다. 이 장면이 낯익지 않으십니까? 레위기 14장에서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는 예식 때 피를 바르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나병환자는 당시 저주받은 자의 대명사였습니다. 진 밖으로 쫓겨나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살아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거룩한 직분인 제사장을 세우시면서, 나병환자와 같은 자리에 피를 바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제사장 역시 본질은 저주받아 마땅한 자라는 뜻입니다. 직분이 높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니고, 가문이 좋다고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그 위에 흘려진 피 때문이었습니다. 듣는 귀, 일하는 손, 걸어가는 발. 사람의 삶 전체에 피가 닿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듣는 것, 하는 일, 걸어가는 길 전부가 다 피로 덮여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세계를 나란히 놓아 보면, 첫째는 피가 없는 세계입니다. 이곳에서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하늘에 닿으려 합니다. 더 착하게 살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헌신합니다. 겉으로 보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는 이상하게도 평안이 없습니다. 어제 쌓은 공로가 오늘 무너질까 불안하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 초조하고, 실수하는 날이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시험을 앞둔 학생 같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오지 않습니다. 합격 기준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했는지가 늘 문제가 되니, 끝이 없습니다.
둘째는 피가 있는 세계입니다. 이곳에서도 제단 앞에 서는 사람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합격 기준이 내 안에 있지 않고 제단 위에 있습니다. 이미 피가 흘려졌고, 이미 값이 치러졌습니다. 내가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라 그분이 무엇을 하셨느냐가 기준입니다.
그래서 피가 있는 세계의 사람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실수를 해도 무너지지 않고, 남이 잘되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랑할 공로가 없으니 감출 것도 없고, 의지할 것이 피뿐이니 흔들릴 것도 없습니다.
복음의 피는 한 가지 일을 합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던 의로움의 찌꺼기를 깨끗이 쓸어내는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다 더러운 옷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더러운 옷 위에 훈장을 달고 싶어 합니다. "이만큼 봉사했습니다", "이만큼 헌금했습니다", "이만큼 참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는 훈장을 닦아 주지 않고 옷을 통째로 벗겨 새 옷을 입힙니다.
그래서 복음은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게 들립니다. 내가 쌓은 것이 하나도 계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서운함 너머에 가장 큰 자유가 있습니다.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더 이상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 너희가 나머지를 채워라"가 아닙니다. 정말로 다 이루었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에 더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부족하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교회는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들이, 그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분의 피로 한자리에 모인 곳입니다. 교회가 교회인 이유는 우리의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 피가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졸업식 사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졸업장을 든 아이 뒤에 서 있던 어머니는 한 번도 "내가 이만큼 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환하게 웃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이 꼭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이 영광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뒤에서, 아니 우리 앞에서 대신 피 흘려 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 곧 안식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귀와 손과 발이 피로 덮여 있습니다. 이 피를 의지하고, 이 피를 자랑하며, 이 피 안에서 평안히 사십시오. 피가 있는 세계에 들어온 사람은 더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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