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수기 18:21~24)
어릴 적, 교회를 다니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장면을 기억할 것입니다. 헌금 봉투에 꼬박꼬박 이름을 적고, 월급날이 되면 계산기를 두드려 정확히 십 퍼센트를 맞추어 내는 부모님의 모습은 일종의 의례였고, 규칙이었고, 때로는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왜 십 분의 일입니까? 그리고 그 돈은 어디로 갑니까? 민수기 18장은 그 질문에 뜻밖의 방향에서 답을 건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성막, 즉 회막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핵발전소 같은 곳이었습니다. 엄청난 에너지가 거기서 나오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잘못 접근하면 죽습니다. 민수기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22절). 그렇다면 거룩한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는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은 백성들의 대리인으로 회막에서 일합니다. 백성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가 죽는 대신, 레위인이 그 위험한 거룩함을 대신 감당합니다. 그 수고에 대한 보상이 바로 이스라엘 전체의 십일조입니다.
레위인은 또다시 자신들이 받은 것의 십 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올립니다. 제사장은 그 제물 중 여호와께 드려지는 온전한 것에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백성 → 레위인 → 제사장 → 여호와 이런 순입니다.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 제도가 아니라,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정교한 중보의 통로였습니다. 그러니 십일조의 본질적인 문제는 돈이 아니라 죄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율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에 십 분의 일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 14장입니다. 아브람은 318명의 가병을 이끌고 조카 롯을 납치한 네 왕의 연합군을 추격해 대승을 거둡니다. 현대적 언어로 옮기자면, 소규모 특공대가 중동 최강의 연합군을 격파한 셈입니다. 군사 전문가라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을 일입니다. 그 불가능한 승리를 안고 돌아오는 아브람 앞에 두 명의 왕이 나타납니다.
소돔 왕은 거래를 제안합니다. "사람은 내게 돌리고 물건은 네가 가지라." 이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공로에 합당한 몫을 챙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왕이 나타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입니다. 그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에게 선언합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아브람은 그 순간을 알아차립니다. 이 승리는 내 것이 아니었구나. 318명의 훈련과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전리품 전체의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속죄의 개념이 아닙니다. 강요도 아닙니다. 순수한 감사와 인정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승리는 제 것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은 성경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고대 세계에서 족보는 신분증보다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모두 아론의 혈통을 증명해야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에게는 그런 혈통 증명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이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결정적인 논리를 전개합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 레위 제사장도,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도, 사실은 모두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의 계보를 끝까지 따라 올라가면, 결국 멜기세덱이 서 있는 곳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멜기세덱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십니다.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노래합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예수님은 이 시편을 직접 인용하며 자신이 바로 다윗이 '주'라고 부른 그분임을 밝히십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받으십니까? 아무것도 받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주십니다.
율법의 십일조 체계를 떠올려보십시오. 백성들은 레위인에게 드리고, 레위인은 제사장에게 드리고,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립니다. 모두가 무언가를 위로 올려 보내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그 꼭대기에 서 계신 예수님은 오히려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 앞에 드리십니다.
히브리서 7장의 말씀이 이것을 압축합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해, 그다음 백성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끝없이 반복해서, 그러나 예수님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다"(히 7:27). 단번에 영원히 말입니다. 십일조가 '처음 것의 희생을 통한 속죄'를 상징한다면, 예수님은 그 처음 것으로 자기 자신을 드리신 분입니다. 십일조 제도 전체가 가리키던 손가락의 방향, 그 끝에 예수님이 서 계셨던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한 권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평생 활동적이고 의욕 넘치게 살아온 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병으로 일 년 반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 시간이 고통스러웠지만, 그 시간 동안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것이 없어지는 길입니다. 무소유의 청빈을 수행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처음부터 없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몸도, 내 재능도, 내 월급도, 내 시간도, 아브람이 전쟁터에서 깨달은 것처럼 사실은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람들의 삶은 사도행전 4장 32절이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이것은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전부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그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나는 나의 전부가 주님의 것임을 압니까, 모릅니까? 율법의 조문을 따라 억지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과, 자기 소유가 없음을 알고 기쁨으로 내어놓는 사람은, 같은 금액을 헌금함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민수기의 십일조 규정을 처음 읽으면 지루한 제도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그 규정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아브라함의 전쟁터가 나오고, 거기서 멜기세덱이 나타나고, 다윗의 시편이 그 이름을 다시 부르고, 히브리서가 그 이름이 가리키는 분을 마침내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십일조의 계보 끝에 서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전부 내어주러 오셨습니다.
믿음의 여정이란 그것을 조금씩, 더 깊이, 실감해가는 길입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내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 고백이 두렵게 느껴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 고백의 끝에는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 서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말씀 묵상 > 민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민수기 - 땅이 없는 자의 기업, 제사장의 몫 (0) | 2026.05.30 |
|---|---|
| 민수기 - 선물로 받은 자리 (0) | 2026.05.18 |
| 민수기 - 마른 지팡이에 핀 꽃,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 (0) | 2026.05.14 |
| 민수기 - 메뚜기의 눈과 믿음의 눈 (0) | 2026.05.07 |
| 민수기 - 온유한 자와 나병 든 자 (0) |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