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 레위인은 네 직무와 장막의 모든 직무를 지키려니와 성소의 기구와 제단에는 가까이하지 못하리니 두렵건대 그들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레위인은 너와 합동하여 장막의 모든 일과 회막의 직무를 다할 것이요 다른 사람은 너희에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제단의 직무를 다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민수기 18:1~7)
주일 예배가 끝난 뒤였습니다. 한 작은 교회의 주방에서 어느 권사님이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갔고, 식당에는 물 흐르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미안한 얼굴로 다가와 말했습니다. “권사님, 맨날 이렇게 힘든 일만 하시네요.” 그러자 권사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나는 하나님이 나를 여기 써주시는 게 감사해.”
청년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설거지가 어떻게 감사한 일일까? 사람들 눈에 띄는 자리도 아니고, 누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얼굴에는 억지로 참고 견디는 표정이 아니라 정말 기쁜 사람의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날 청년은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내가 하나님께 해 드리는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민수기 18장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라의 반역과 심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 함부로 가까이 나아갔다가 수많은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외쳤습니다. “우리가 다 망해야 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론과 레위인을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말씀은 참 놀랍습니다. 제사장의 직분은 무거운 책임이었습니다. 성막의 거룩함을 지켜야 했고, 백성의 죄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선물”이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를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 더 큰 권한, 더 많은 인정받는 위치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직분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분을 “권리”가 아니라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교회에서 장로 선출을 앞두고 사람들이 술렁였습니다. 누가 될까, 누가 떨어질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 노목사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직분은 벼슬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리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리더십은 세상의 방식과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왕이셨지만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죄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연약했습니다. 그들도 죄인이었기에 자기 죄를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타락하기도 했습니다. 백성을 섬겨야 할 자들이 오히려 백성을 이용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 모습을 처절하게 고발합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특권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바꾸려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직분이 계급처럼 변하고, 섬김이 자랑이 되고, 봉사가 경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영원한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휘장이 찢어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해 길이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느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한 아버지가 울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이 큰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보호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아버지는 무너져 울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믿을 만한 누군가가 딸을 위해 들어가 주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한 곳에 예수님께서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품고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더 이상 버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만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선물로 주셨고, 성령도 선물로 주셨고,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게 하시는 직분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띄는 자리에서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교회를 청소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픈 성도를 위해 밥을 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기도합니다. 세상은 그런 일을 작게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섬김을 “내가 너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몸의 지체가 서로를 살리듯이, 교회도 그렇게 세워집니다. 손이 발에게 “나는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눈이 귀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가 다르지만 모두 몸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혜를 나누어 주십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은 “나는 왜 저 자리 못 가지나?”가 아니라, “주님, 저 같은 사람도 주님의 몸을 위해 쓰시니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이 바뀐 상처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생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직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자기 몸 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오늘도 자기 자리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억지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붙들었던 직분도, 수고도, 눈물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 남는 것은 하나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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