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3장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오십 대 후반의 박 집사님은 작년 겨울, 이십 년 넘게 꾸려 온 작은 인쇄소의 문을 닫았습니다.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었고 십일조도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서랍 깊숙이 있던 낡은 성경을 꺼내 아무 데나 펼쳤는데, 시편이었습니다. 시편을 읽던 그는 놀랐습니다. 자기 마음속 말이 거기 그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편은 점잖은 격려의 책이 아니라 울부짖음의 책이었습니다. 박 집사님은 그제야 시편이 누구의 입에서 나온 기도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성경은 모두 예순여섯 권입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이 서른아홉 권,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이 스물일곱 권입니다. 시편은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와 함께 시가서에 속합니다. 많은 성도가 이 부분을 가장 어려워합니다. 교훈이나 위로의 말로만 읽다 보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는 한 저자이신 성령께서 쓰신 한 권의 책이고, 주제도 하나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떻게 구원받는가, 그리고 그 구원이 누구로 말미암는가입니다. 답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2장에는 에덴동산과 생명나무가 나오고, 요한계시록 22장에는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가 다시 나옵니다. 시작과 끝이 이렇게 맞닿아 있어서 신학자들은 "종말은 태초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시편도 이 길 위에서 읽어야 합니다.
시편은 150편이고 천 년에 걸쳐 쓰였습니다. 모세가 쓴 90편부터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의 시까지 담겨 있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고난과 핍박을 당했고, 그 모습은 훗날 오실 메시아의 고난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래서 다윗의 탄식은 예수님의 기도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뒤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은 다섯 권으로 나뉘는데, 이 순서는 마구잡이가 아닙니다. 1권은 언약의 확인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다윗의 삶에 새겨 두십니다. 2권은 그 약속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3권에서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나라가 갈라지고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3권은 질문으로 끝납니다. "하나님,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약속은 아직 유효합니까?"
4권이 그 질문에 답합니다. 4권은 모세의 시로 시작합니다. 왕이 없던 광야 시절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셨다는 뜻입니다. 지금 왕이 없고 광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 있습니다. 5권은 그 약속을 믿는 백성의 삶을 보여 줍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 곧 찬송입니다. 눈물로 시작한 책이 마지막 150편에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로 끝납니다. 시편의 구조는 고난에서 영광으로 가신 예수님의 길을 그대로 닮았고, 그분을 따르는 성도의 길도 닮았습니다.
박 집사는 시편 1편의 첫 줄에서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속으로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이 구절은 원래 감탄입니다. "아, 복되도다, 그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라는 정해진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죄에 빠지는 과정도 걷고, 서고, 앉는 순서로 그려져 있습니다. 죄를 따라 걷다가 멈춰 서고,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대로 삽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우리 중에 있을까요? 로마서 3장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편 1편이 가리키는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서 진짜 복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던 복과 전혀 달랐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으셨고, 멸시당하고 배반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시편 2편은 바로 이 장면을 예고합니다.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과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나의 왕을 시온에 세웠다." 그리고 2편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개역성경에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로 되어 있지만, 이 말은 앞의 "그 아들"을 가리킵니다. 아들 되신 예수께 피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 가게 됩니다.
박 집사님이 가장 오래 붙잡은 시는 73편이었습니다. 시인은 악인이 편안히 살고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거의 넘어질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깨끗하게 살아 온 것이 헛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박 집사님은 가게 앞을 지나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편법을 쓰던 이웃 가게는 오히려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바뀐 것은 한 장소에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나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복을 그대로 사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환경을 뜻하는 "주위"라는 말과 "서다"라는 말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서 있는 것들, 곧 내 밖에 있는 것들입니다. 가게가 문을 닫는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내 밖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다른 분이 계십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은 말합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기독교는 환경을 바꿔서 평안을 얻는 종교가 아니라, 안에 계신 예수로 말미암아 내가 바뀌는 종교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끌려갔고, 정직하게 살다가 오히려 감옥에 갇혔습니다. 시편은 그의 처지를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같은 감옥 안의 요셉을 두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환경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을 위해 병을 허락하시고, 믿음을 위해 사업을 접게 하시더라도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이 형통입니다.
평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평안이 처음 나오는 곳은 기드온의 이야기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추수철마다 곡식을 빼앗아 가자, 기드온은 포도주 틀 속에 숨어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신다"고 하자 기드온이 따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습니까?" 우리가 고난 중에 하는 질문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위 위에 제물을 놓게 하고 지팡이 끝을 대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살랐습니다. 바울은 이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뵈었으니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샬롬", 곧 여호와는 평안이시라고 지었습니다.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반석이신 그리스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안은 문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박 집사님의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게는 여전히 닫혀 있었고 통장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벽마다 시편을 읽으면서 시선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시편 120편에서 130편을 읽던 그는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의 노래였습니다. 힘든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눈물 대신 노래를 불렀습니다. 목적지가 이 땅의 사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시편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확인하게 하는 책입니다. 힘이 드는 날일수록 눈을 밖의 환경에서 안에 계신 예수께로 돌려 보십시오. 눈물에서 시작한 시편이 찬송으로 끝나듯,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의 길도 결국 찬송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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