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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역대상하

역대상 - 약함을 붙드신 손, 이름으로 이어진 은혜, 에훗의 아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0. 8.

역대상 8장 6~13절

6   에훗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그들은 게바 주민의 우두머리로서, 사로잡혀 마나핫으로 갔으니
7   곧 나아만과 아히야와 게라이며 게라는 또 웃사와 아히훗을 낳았으며
8   사하라임은 두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 보낸 후에 모압 땅에서 자녀를 낳았으니
9   그의 아내 호데스에게서 낳은 자는 요밥과 시비야와 메사와 말감과
10   여우스와 사갸와 미르마이니 이 아들들은 우두머리이며
11   또 그의 아내 후심에게서 아비둡과 엘바알을 낳았으며
12   엘바알의 아들들은 에벨과 미삼과 세멧이니 그는 오노와 롯과 그 주변 마을들을 세웠고
13   또 브리아와 세마이니 그들은 아얄론 주민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들이 가드 주민을 쫓아냈더라

성경 통독을 하다가 많은 분이 역대상에서 멈춥니다. 첫 장부터 아담, 셋, 에노스로 이어지는 이름의 행렬이 이어지면 눈이 흐려지고 책장은 점점 느리게 넘어갑니다. 8장에 이르면 베냐민 지파의 이름들이 낯선 발음으로 쏟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페이지를 "
설교 본문이 되기 어려운 곳"으로 분류해 두곤 합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처음 읽힐 때 결코 지루한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백성에게 이 이름들은 "너희는 끊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신다"는 편지였습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 앞에서 자기 이름이 적힌 줄을 발견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줄 하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문은 "
에훗의 아들들"로 시작합니다. 전통적으로 에훗은 사사기 3장의 사사 에훗과 연결해서 읽습니다. 본문이 두 사람을 직접 동일시한다고 단정하지는 않지만, 같은 베냐민 지파이고 '게라'라는 이름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이 연결은 설교자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다리가 됩니다. 사사기는 에훗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왼손잡이였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을 따르면 '오른손이 막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속한 베냐민이라는 이름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입니다. '오른손의 아들'이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기자가 일부러 대비를 둔 것처럼 읽힙니다.

모압 왕 에글론이 십팔 년 동안 이스라엘을 눌렀습니다. 백성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강한 장군도 아니고 이름난 용사도 아니었습니다. 오른손이 막힌 사람이었습니다. 에훗은 왼쪽 허벅지에 칼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호위병의 검문을 통과했고, 이스라엘은 그 칼 하나로 팔십 년 동안 평안을 누렸습니다.
여기서 사사기는 에훗이 대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입니다. 에훗의 약함은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가 되었을 뿐, 에훗이 극복한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는 '킨츠기'라는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습니다. 깨진 그릇을 버리지 않고 금가루를 섞은 옻으로 이어 붙입니다. 그러면 깨진 자리가 오히려 그릇에서 가장 빛나는 선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금 간 자리를 감추지 않으십니다. 그 자리에 은혜를 입히셔서 "
이것이 내가 한 일이다"라고 말씀하게 하십니다. 에훗의 왼손은 그의 약점이었지만, 은혜는 그 왼손에 이야기를 새겼습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여기서 우리의 기대를 뒤집습니다. 구원자의 아들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6~7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은 게바 주민의 족장이었으나 사로잡혀 마나핫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게라'라는 이름도 나오는데, 이 가문을 끌고 간 일에 게라가 관련되어 있다고 본문은 전합니다. 아버지는 나라를 구했는데 아들들은 고향을 잃었습니다. 한 세대의 승리가 다음 세대의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가문이라고 해서 고난의 면역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집안에도 이사가 있고, 실직이 있고, 낯선 땅에서의 겨울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고향 교회를 두고 내려온 피난민 가정을 떠올려 봅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집사였고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남쪽 낯선 도시에서는 짐꾼으로 하루를 벌어야 했습니다. 그분들의 간증에는 이런 고백이 자주 나옵니다. "
고향을 잃었는데 하나님은 잃지 않았다." 마나핫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그 가문을 기억하고 계신 또 하나의 장소였습니다.

8~12절로 가면 이야기는 더 어수선해집니다. 사하라임이라는 사람이 모압 땅에서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보낸 후에'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이별과 이주, 가정의 균열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이 사정을 감추지 않고 이름을 하나하나 적습니다. 요밥, 시비아, 메사, 말감, 여우스, 사갸, 미르마까지 모두 이름이 불립니다. 우리는 가계도를 그릴 때 조금 어색한 이름은 빼고 싶어 합니다. 이혼, 실패, 방황, 사업의 파산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족보에는 편집된 가문만 올라가지 않습니다. 모압 땅에서 흩어진 가정의 이름도 그분의 책에 기록됩니다.

어느 할머니가 손주에게 가족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고 합니다. "
이 사진에는 아버지가 빠졌다. 그때는 우리 집이 제일 어려웠거든." 그러자 손주가 되물었습니다. "그때가 있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 거 아니에요?" 흠 없는 사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흠 있는 사진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믿음의 가정이 하는 일입니다.

이 본문의 후반부는 건축의 이야기입니다. 엘바알의 아들들은 오노와 롯과 그 주변 마을들을 건축했습니다. 브리아와 세마는 아얄론 주민의 족장이 되어 가드 주민을 쫓아냈습니다. 끌려갔던 가문의 후손들이 어느새 마을을 세우고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들이 어떤 비범한 능력을 가졌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건축했고, 그 자리에 머물렀고, 지켰다고 적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큰일은 때로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에훗의 한 번의 칼이 한 세대를 구했다면, 그 후손들의 벽돌 한 장 한 장은 다음 세대가 살 집을 만들었습니다.

지하 상가 한켠에서 시작한 작은 교회가 있다고 해 봅시다. 처음 십 년 동안은 화려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보를 접고, 의자를 펴고, 주일마다 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자란 아이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 복음을 들고 가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가 한 건 문을 연 것뿐이었는데요."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읽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에훗처럼 약점을 극복하고 쓰임받자"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이야기의 주어가 다시 우리가 됩니다. 에훗의 이야기에서 구원자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후손들의 이름을 기록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두고 세 번 기도했을 때 이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그리고 이 약함의 이야기는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가장 약해 보이던 자리, 못 박히신 손에서 세상의 죄가 해결되었습니다. 오른손이 막힌 에훗을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은, 못 박힌 손으로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마치며 우리는 세 가지를 붙듭니다.
약함을 숨기지 말고 은혜의 손에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금 간 자리에 일하시는 분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완벽한 가문이 아니라 은혜의 이야기를 물려주십시오. 자녀가 우리의 업적보다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마나핫에 있어도 그 자리에서 건축하십시오. 옮겨진 곳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입니다. 그곳에서 순종의 벽돌 한 장을 올리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의 이름도 이미 그분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