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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전도서

전도서 - 옳은 편에 서다, 전도서 10장이 말하는 오른편의 비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9. 22.

전도서 10장 2~3절

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3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


어릴 적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면 어김없이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
오른손으로 먹어야지!"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바꿔 잡았습니다. 왼손잡이는 인구의 7~10퍼센트에 불과하고, 세상의 모든 도구가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살아가기 편하라고 그렇게 다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래된 습관이 성경을 읽는 우리의 눈에도 은근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오른쪽은 좋은 것, 왼쪽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전도서 10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이 구절만 뚝 떼어놓고 보면 정말 오른쪽이 옳고 왼쪽이 그르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성경 곳곳에서 오른쪽은 더 나은 자리로 그려집니다. 눈먼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오른손이 차남에게 가자 요셉이 급히 아버지의 손을 바꾸려 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최후의 심판을 그린 비유에서도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섭니다. 이런 본문들을 보면 오른쪽에 무슨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
오른쪽·왼쪽"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떠올리는 것이 따로 있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대립입니다. 이 구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나옵니다. 혁명 후 소집된 의회에서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왼쪽 자리에, 온건한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오른쪽 자리에 앉았던 데서 좌파·우파라는 정치 지형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서 냉정하게 계산을 한번 해봅시다. 전도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좌파·우파라는 용어가 사용된 지는 고작 230여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3천 년과 230년, 이 숫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전도서의 오른쪽과 왼쪽을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진영 논리로 읽어내려는 시도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전후로 지금까지 좌익과 우익이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해왔습니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심지어 교회 안까지도 이 편 가르기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럴 때 예수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말은 단 하나입니다. "
둘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도 좌도 없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옳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서 10장 2~3절은 애초에 무엇을 말하려던 것일까요? 다른 번역본을 함께 놓고 보면 실마리가 풀립니다. 새번역은 이렇게 옮깁니다. "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일 쪽으로 기울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그릇된 일 쪽으로 기운다." 공동번역은 아예 방향의 언어를 걷어내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로운 생각을 따르면 잘 되지만 어리석은 생각을 따르면 실패하게 마련이다." 두 번역을 나란히 놓고 보면 분명해집니다. 히브리어 본문이 말하려던 것은 공간적 위치, 즉 물리적인 오른쪽·왼쪽이 아니라 '옳은 편'과 '그른 편'이었습니다. 지혜자는 옳은 길로 가고, 우매자는 그른 길로 갑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3절입니다. 우매한 자는 자신이 그른 길을 가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매한 사람의 진짜 문제는 그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붙잡아도,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그 어떤 진영과 이념도 저절로 '옳은 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이 옳은 편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를 훨씬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시편 16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언뜻 다윗 자신의 신앙 고백처럼 들리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 이 시편을 정면으로 인용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즉 시편 16편은 다윗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윗 속에 임한 그리스도의 영이 미리 내다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언이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시편 110편 1절을 이어 인용합니다. "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2장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바로 이 구절을 들어 물으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어찌 '주'라 칭할 수 있었느냐고 말입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오른편'이란 처음부터 땅의 좌우 진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 곁에 계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시 그 자리로 높임받으신 그리스도 한 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무법자나 무신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지킨다고 자부하던 유대인의 여러 파당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설교 중에 "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외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회개가 아니라 이를 갈며 귀를 막고 달려들어 돌로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했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평생토록 자기가 옳다고 믿고 헌신해온 것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상 대대로 옳다고 여겨온 전통, 스스로 쌓아온 신앙의 열심, 자기 정체성 그 자체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평생 옳다고 여긴 것이 무너지면 자기 자신도 함께 무너진다고 느꼈기에, 차라리 참으로 옳으신 분을 죽이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이 교주의 명백한 악행을 보고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심리입니다. 평생을 걸고 옳다 믿어온 것을 부인하는 순간, 그것을 부인해온 자기 자신마저 부인해야 하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편 109편은 이런 사람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라는 구절처럼, 주님의 우편에 계신 분을 대적하는 자들의 오른편에는 다름 아닌 사탄이 서 있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모든 진영의 정체는 결국 사탄의 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편 109편은 놀라운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여기서 궁핍한 자란 세상의 힘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긴 채 옳은 길을 걸어간 이들, 곧 예수님과 그 백성을 가리킵니다. 원래 하나님 보좌 우편은 예수님 자신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의 자리를 스스로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자기의 살과 피로 하나 되게 하여 다시 그 우편에 함께 앉히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이것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골로새서 3장은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돌려놓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땅의 좌우편이 아닙니다. 하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의 결론도 같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세상의 오른편과 왼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만이 옳으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오직 그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전도서 10장의 오른쪽과 왼쪽은 정치적 진영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신앙마저 편 가르기의 도구로 삼아 자기가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온갖 성경 구절을 끌어다 쓰는 모습, 그것이 바로 3절이 말한 '자기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우매한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의 진영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분만이 참으로 옳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
나는 좌인가 우인가"가 아니라 "나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는가"입니다. 그 답을 붙든 사람에게는 더 이상 세상이 나눠 놓은 좌도 우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보며,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한 길만이 남습니다. 그것이 전도서가 3천 년 전부터 우리에게 가리켜온, 진짜 '옳은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