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전도서 8:1~5)
몇 해 전, 어느 전도사가 사역할 때 함께 일했던 선배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인상이 좀 사나웠습니다. 말투도 거칠고 행동도 투박했습니다. 교사들은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뒤에서 수군거리곤 했습니다. 반면에 세상에는 얼굴도 그럴듯하고 말도 부드러운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데 능숙한 이들은 오히려 인상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전도서 기자가 말하는 "지혜자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사나운 것이 변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표정 관리를 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풀어줍니다. "찡그린 얼굴을 펴고 웃음을 짓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다." 찡그린 얼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의 얼굴입니다. 다스림을 받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결국 이 본문은 얼굴 표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의 통치를 받아들이며 사는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왕이 필요 없는 나라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왕이셨고, 백성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따라 살면 되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제사장이 속죄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 말기,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을 믿지 못하고 사무엘에게 나아가 사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이 서운해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왕이 사울입니다. 처음엔 겸손했지만, 전쟁에서 이기고 백성의 환호를 받으면서 사울은 점점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소년 다윗을 새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러나 현실의 권좌에는 여전히 사울이 앉아 있었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이들은 대부분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초라해 보이는 무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받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가? 보이는 권세인가, 하나님이 세우신 뜻인가?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갔을 때, 그는 물레 위에서 그릇이 터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토기장이는 터진 흙을 버리지 않고 자기 뜻대로 다시 빚어 다른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장면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다."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에 대한 뜻을 돌이키시고, 순종하지 않으면 복에 대한 뜻도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문은 늘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진흙 주제에 토기장이의 손을 뿌리친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어리석음을 이렇게 꼬집습니다. "옹기 흙이 어찌 옹기장이에게 당신이 무엇을 만드는 거요 할 수 있겠느냐. 작품이 어떻게 작자에게 형편없는 솜씨라고 불평할 수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왜 나를 이렇게 낳았느냐"고 따질 수 없는 것처럼, 피조물이 창조주께 항의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왕인 양, 신인 양 살아갑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안 하겠다." "내가 목사라면 이렇게 안 하겠다." 이런 말들 속에는 은연중에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이야기 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의 온갖 봉사를 도맡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고,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병이 찾아오자 그분의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충성했는데 어떻게 저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이 마음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항의의 밑바닥에 여전히 "내가 왕이다"라는 착각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헌신한 만큼 하나님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셔야 한다는 계산, 그것 역시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삿대질하는 몸짓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그래도 나는 더 헌신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얼핏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라기보다, 조건을 채우면 복을 받아내겠다는 또 다른 형태의 거래일 수 있습니다. 왕의 명령을 지킨다는 것은 이런 거래와 항의를 넘어서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만왕의 왕이 이 땅에 오신 밤, 예루살렘은 두 갈래로 소동했습니다. 동방박사와 목동들은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반면 헤롯과 온 예루살렘은 그 아기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같은 소식을 듣고도 어떤 이는 경배했고, 어떤 이는 두려워하며 없애려 했습니다. 이 두 반응은 지금 우리 안에도 함께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내 삶에 임할 때, 우리는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은근히 그 통치를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인상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소동과 닮아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화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모세와 엘리야가 증언한 그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남김없이 이루신 그분이 바로 만왕의 왕이십니다.
전도서 기자는 말합니다. "왕의 명령을 지키는 이는 안전하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를 안다." 이 말씀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라는 초대입니다. 왕의 명령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세상만사가 자기 뜻대로 안 풀려도 인상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뜻대로는 안 되어도 왕의 뜻대로는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찡그린 얼굴이 펴지는 것은 표정 연습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참된 왕의 손에 나를 맡길 때 비로소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그것이 지혜자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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