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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전도서

전도서 -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서, 하나님 경외의 자리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도서 7:13~18)

어버이날, 자녀들이 부모에게 드리는 선물 가운데 단연 1위는 현금이라고 합니다. 꽃은 이틀이 지나면 시들어 버려야 하고, 책은 "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케이크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밀려납니다. 결국 머니(money)가 최고라는 우스갯소리 속에, 우리가 얼마나 손에 잡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지가 드러납니다. 전도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돈의 그늘 아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 그늘 바깥으로 자꾸만 이끌어 내십니다. 지혜의 그늘, 곧 당신의 품 안으로 말입니다.

전도서 7장 13절은 묻습니다. "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하나님, 이 길을 고속도로처럼 열어 주십시오"입니다. 장애물을 치워 달라고, 막힌 것을 뚫어 달라고,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정성을 다합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리고 그 굽음 자체가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합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심한 말라리아에 걸려 몇 달을 병상에 누웠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
하나님, 저는 지금 이 시간도 아깝습니다. 왜 저를 이 자리에 눕혀 두십니까?" 그러나 병상에서 그는 그 나라 언어를 완전히 익혔고, 그 지역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고백했습니다. "내 사역의 가장 풍성한 열매는 모두 그 침대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굽다고 여겼던 그 길이, 하나님께서 곧게 하고 계신 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하심은 성경 안에 이미 계시되어 있습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버려두심이 때로는 심판이고, 내 계획이 꺾이는 것이 때로는 구원입니다.

14절은 아름다운 균형을 가르쳐 줍니다. 잘될 때는 기뻐하십시오. 안될 때는 돌아보십시오.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함께 허락하셔서 우리가 내일을 마음대로 예측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도 우리는 기뻐하지 못합니다. "
내일은 어떻게 되려나" 하는 불안이 오늘의 행복을 먹어 치웁니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한 날 밤, 어떤 부모는 기뻐하는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졸업하고 취직은 될까?" 기쁨을 누릴 자리에서 염려로 달려가는 것,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의 한 형태입니다.

반대로 일이 틀어질 때, 우리는 그것이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일이 틀려가거든,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인 줄 알아라." 곤고한 날은 무너지는 날이 아니라 돌아보는 날입니다.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다시 기억하는 날입니다.

15절에서 전도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합니다. 의롭게 살았는데 멸망하는 사람이 있고, 악하게 살았는데 장수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이 말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그는 율법에 관한 한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의 표현을 빌리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나친 의로움이 결국 그를 어디로 이끌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묵인하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손에 쥐고 다메섹으로 달려가던 사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달리면 달릴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0장 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열심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열심이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 지나침의 방향이 틀려 있었습니다. 자기 의를 세우는 방향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도서가 경고하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것"의 본질입니다. 자기 의를 쌓아 올리면 올릴수록, 그 탑이 하나님의 의로운 은혜를 가리게 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은 바울이 됩니다. 그는 이제 전혀 다른 극단성을 보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그는 선언합니다. "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것은 또 다른 극단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극단성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이전의 사울의 극단성은 자기 의를 세우는 방향이었습니다. 이후 바울의 극단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키는 방향입니다. 인간의 공로로 구원의 문에 한 발이라도 들여놓으려는 시도를 막는 것은 지나침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로마서 1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아직 복음 안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하여 음식 규정이나 절기에 매인 형제들을 향해, "네가 뭔데 그를 비판하느냐"고 합니다.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균형이 드러납니다. 복음의 진리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바울이, 연약한 형제 앞에서는 한없이 넓은 품을 가집니다. 저주 받으라는 말과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모순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균형입니다.

"과유불급", 이 말은 중용, 곧 양극단의 중간 어딘가를 찾으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전도서 18절은 그 답을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균형의 비결은 중간 지점의 계산이 아닙니다. 하나님 경외입니다.

어느 줄타기 곡예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외줄 위를 걸어온 사람이었는데,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
어떻게 그 높은 곳에서 균형을 잡습니까?" 그가 답했습니다. "저는 균형을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앞을 봅니다. 앞을 고정해서 바라볼 때 몸이 저절로 균형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그렇습니다. 왼쪽을 보지 말까, 오른쪽을 보지 말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삶이 저절로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형통할 때 기뻐할 수 있는 것도, 곤고할 때 돌아볼 수 있는 것도, 복음의 진리를 지키면서도 연약한 형제를 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 경외에서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내가 설 것을 생각하면, 형제를 함부로 비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신 것처럼 그도 받으셨음을 알면, 내가 그를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갑니다. 지나치게 의로워지려 해서 은혜를 놓치기도 하고, 지나치게 자유롭다며 형제를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형통할 때 기뻐하지 못하고, 곤고할 때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 모든 치우침의 해답을 전도자는 한 문장으로 마칩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이라." 굽은 길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형통도 곤고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우리의 서 있음과 넘어짐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 손을 경외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