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말씀 묵상/전도서

전도서 - 헛된 삶과 평온한 삶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3. 18.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우매 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전도서 4:4~8)

봄이 되면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상추 몇 포기, 고추 몇 그루를 심어 저녁 밥상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또 어떤 이는 옆집 텃밭이 자기 것보다 넓고 수확이 많은 것을 보고 밤잠을 설칩니다. 봄이 지나도록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 이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은 수천 년 전 전도서 기자가
'해 아래서' 목격한 인간의 세 가지 얼굴입니다.

전도서 4장 4절은 사람이 모든 수고와 재주로 무언가를 이루면, 그 결과는 이웃의 시기를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은
"사람이면 누구나 경쟁심이 있어서 남보다 더 얻으려고 기를 쓴다." 이 한 문장은 현대인의 일상을 꽤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몇 해 전 한 중견 기업의 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부장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승진이었습니다. 그런데 발령장을 받던 날 저녁, 그는 이상하게도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눈에는 이사 자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장이 되는 것이 목표였을 때는 몰랐습니다. 목표란 언제나 잡힐 듯 보이다가, 막상 손에 쥐는 순간 더 먼 곳으로 이동해 버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부장이 된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정과 시기는 늘 함께 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것을
"바람을 잡는 것"이라 했습니다. 바람을 잡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람을 잡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오래된 수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고를 멈추면 될까요? 5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매한 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낸다." 경쟁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어리석음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자연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끕니다. 도시의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깊은 산속에서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은, 도시보다 더 부지런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팔짱을 끼고 앉아 자연의 풍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기 전부터 몸을 움직여야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두 가지 어리석음을 나란히 놓습니다. 시기와 경쟁에 불타 두 손 가득 움켜쥐려는 삶과, 그 허무를 빌미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 이 둘은 겉으로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 머뭅니다. 한쪽은 지쳐서 쓰러지고, 다른 쪽은 굶어서 쓰러집니다.

6절에서 전도서 기자는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이것은 단순히 '적게 가지고 만족하며 살자'는 권고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는 그것이 인간의 의지로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은 스스로 욕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수년을 보낸 후 귀국했습니다. 그는 귀국 후 처음 대형 마트에 들어갔을 때 느낀 감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무 많았습니다. 빵의 종류만 수십 가지가 넘는데, 저는 어떤 빵을 골라야 할지 몰라 그냥 서 있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을에서 옥수수죽 하나를 함께 나눠 먹던 저녁들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는 가난했던 그 시절이 더 풍요로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자기 수양의 결과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그 충만함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한 손의 평온은 비워진 나머지 한 손에 더 중요한 것이 들어올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7~8절은 더 쓸쓸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쉬지 않습니다. 재산을 모으고 또 모읍니다. 그러다 어느 날 스스로 묻습니다. "
내가 누구를 위하여 이 고생을 하는가?" 이 질문은 공허합니다. 대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누군가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 내면의 동력이 어디서 오는지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약 3:15~16). 우리를 끝없이 달리게 하는 그 엔진이 선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4장 5절은 놀라운 문장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그리워하신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무서운 표현이지만, 동시에 매우 따뜻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두 손을 뻗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두신 성령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의 것들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기시는 힘이 더 큽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눈이 바깥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실 때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을 예언했습니다(사 11:6~7).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같은 자리에 앉는 그 나라. 그것은 사회 제도가 바뀐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평화를 이미 당신의 몸으로 이루셨습니다. 로마서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차별이 없는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가 있습니다(눅 12:16~21). 풍년이 들어 곳간이 가득 찼습니다. 그는 곳간을 더 크게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날 밤 하나님이 그의 목숨을 가져가셨습니다.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비유의 핵심은 부자가 쌓은 재물의 양이 아닙니다. 그가 영혼의 쉼을 재물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쉼은 재물로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한 곳에서만 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진정한 평온은 덜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말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여기서 '자족'은 스스로 만족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4장에서 쓴 것처럼, 이것은 "배운" 것입니다. "내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배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넘어지고, 부족함을 겪고, 그 안에서 채워지는 주님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알아간 것입니다.

한 손의 평온은 철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성령이 우리를 빚어가시는 흔적입니다. 두 손 가득 움켜쥐려다 지쳐서 손을 놓았을 때, 그 빈 손에 주님이 오셨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고요함입니다.

봄날의 텃밭에서 상추 몇 포기를 심어 저녁 밥상에 올리는 그 사람이 옆집보다 넓은 땅을 갖지 못한 것이 가난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가 저녁 식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감사 기도를 드린다면, 그의 한 손에 든 것은 충분합니다. 그것이 전도서 기자가
'해 아래서' 보고 싶었던 삶,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가능해진 삶인 것입니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전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