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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 피로 물든 강가에서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5. 12.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출애굽기 7:17)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나일강에는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았고, 물 위에는 희미한 햇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강가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물을 길으러 왔고, 어떤 이는 기도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애굽의 왕 바로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나일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었고, 애굽의 힘이었으며, 자신이 다스리는 세계의 상징이었습니다.

바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
이 강은 내 것이다. 내가 이 나라를 살린다.” 사람들은 그런 바로를 보며 안심했습니다. 왕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이 흐르니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침,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 강가로 보내셨습니다. 모세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한때는 양을 치던 목자의 지팡이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심판의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다.” 성경은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말 속에는 단순히 고집이 세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속에는 “무겁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의 문제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더 믿는 것,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 의를 더 붙드는 것, 그것이 바로의 완악함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너무 쉽게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속으로 은근히 생각했습니다. “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겪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건강이 무너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 삶을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기 의를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일강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피로 변했습니다. 물고기들이 죽고 악취가 올라왔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첫 번째 재앙을 “
”로 시작하셨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애굽을 괴롭히기 위한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표징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생명이라고 붙들고 있는 그것이 사실은 죽음이다.” 애굽은 나일강을 생명의 강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물의 본질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 없는 생명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붙들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예를 얻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식이 잘되면 행복할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것을 흔드시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
내가 생명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나를 살리지 못하는구나.” 그때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어떤 사람은 더 완악해집니다. 다른 물을 찾으려고 강가를 팝니다. 끝까지 자기 방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애굽 사람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피가 된 강물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팠습니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인생이 무너질수록 더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과 같습니다. 공허한데도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고, 더 인정받으려 하고, 더 강한 자극을 찾습니다. 그러나 갈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 끊어진 데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은혜를 봅니다. “
아, 내가 붙들던 것이 생명이 아니었구나.”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생명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경은 피를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피 흘림이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피를 통해 생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물을 십자가의 피로 바꾸시는 표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기적만 찾습니다. 더 놀라운 체험, 더 강한 능력, 더 신비한 현상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싶으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
내 아들의 피만이 너를 살린다.” 애굽의 요술사들도 물을 피로 바꾸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피를 다시 물로 바꾸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세상의 종교와 인간의 노력도 그렇습니다. 잠시 사람을 흥분시키고 위로하는 것 같지만, 결국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죽은 영혼을 살립니다.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노인이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울고 있었고, 의사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희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이제 집에 갑니다.” 두려움보다 평안이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의를 붙들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고 말하지만, 그에게 죽음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의 피 이적은 단순히 강물이 붉게 변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거짓 생명을 무너뜨리시고, 참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애굽은 끝까지 피를 재앙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피를 구원의 표로 보게 됩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어리석고 불쾌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문이 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
네가 붙들고 있는 나일강은 무엇이냐?”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