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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240

하나님의 숨을 들이마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세기 2:7)성경은 모든 인간을 “죽은 자”라 선언합니다. 그건 비유가 아닌 진단이고, 선언이며, 실존입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나며, 그 자체로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동시에,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그렇다면 진짜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숙, 사랑, 인내 같은 외적 열매들입니까? 그런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일 수는 있어도 본질은 아닙니다.죽은 자는 감각이 없습니다. 통증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다는 증거는 ‘감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 감정의 희로애락을 말함이 아닙니다. 그건 죽은 .. 2025. 6. 10.
사랑의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영원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사랑한다는 말이 결코 가벼운 감정이나 단순한 호감의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 바뀌는 사건이라면 말입니다. 그 사람과는 이미 깊은 상태적 연합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닿았고, 진심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장막은 이 연합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육체로, 삶으로, 상황으로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이 땅 위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은 동일한 믿음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유일한 사랑, 하늘로부터 온 그 사랑, 그것 하나뿐입니다. 인간의 사랑, 세상의 사랑, 감정과 욕망의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사랑'은 사실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도용한 채, 내 중심의 만족.. 2025. 6. 10.
왜 양으로 보내시는가? – 이리들의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법 세상은 치열한 경쟁의 전쟁터입니다. 자본주의의 이리 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날마다 싸웁니다. 더 나은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 모두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앞서 가려는 사회 속에, 예수님은 우리를 양으로 보내십니다. 왜일까요?양은 세상에서 가장 무기 없는 짐승입니다. 코에 파리가 알을 낳아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이며,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습니다. 무력하고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양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이리들 사이로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이리처럼 싸워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뒤를 따라가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양은 '비전'을 말하지 않습니다. 양은 미래의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2025. 6. 10.
성경의 권위 앞에 선 인간의 진정한 지혜에 대하여 우리는 날마다 선택의 기로 앞에 섭니다. 그것은 단지 크고 작은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근원과 방향, 의미와 목적에 관한 질문 앞에서 어떤 권위를 따를 것인가에 대한 선택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이성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인간은 이성적 존재입니다. 이성은 우리가 가진 귀한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른 피조물과 구별지으신 한 가지 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며, 이유를 따지고, 이치를 따르며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의 일부이며, 이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도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성이 타락한 인간 안에서 오염되었고, 그로 인해 진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는 데.. 2025.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