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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320

누군가와 충분히 공감하라 공감하는 것보다 더 친절한 것은 없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공감을 표현하십시오. 당신도 누군가의 공감이 필요한 날이 올 것입니다.공감은 심각한 상실이나 시련을 겪은 사람을 동정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같은 마음'이 된다는 것은 마음이 통하고, 즐겁고, 유쾌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상대방과 공감을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혼자서만 문제를 떠안고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이 두렵다면 공감은 불가능할 것입니다.또한 공감은 상대를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으면서 더 충만한 인생을 경험하고 상대를 한층 더 가깝게 느끼는 길입니다. 공감하고 배우면서 인간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입니다.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자연히 당신 주위에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상처와 .. 2025. 6. 9.
내 안의 하갈을 내쫓으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라디아서4:28~31)갈라디아서 4장은 창세기의 사건을 끌어와 놀라운 복음의 그림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 이 둘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율법과 은혜,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행위와 약속을 상징하는 두 언약의 그림입니다.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 인간의 열심과 계산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반면 사라에게.. 2025. 6. 8.
아브라함, 할례, 그리고 묵시적 구원의 표식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 2025. 6. 8.
너의 역사와 너의 인생에 분노하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이것이 믿음에 속하기 위하여 은혜로 되나니…”(로마서 4:15~16)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로 여겨진 것이 율법이나 할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 믿음은 할례 이전의 것이었습니다. 이는 복음이 어떤 민족적 전통이나 인간의 행위, 제도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은혜로 주어진 약속,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렇다면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 복음은 어떤 분노를 일으켜야 합니까? 관용은 인간의 유익을 넘을 수 없습니다.난민전 사건으로 수배를 당하던 중에 프랑스로 망명을 했다가 그곳에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 2025.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