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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318

죄인 생명을 사기 위해 뛰는 사람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 2025. 6. 8.
죽음이라는 완성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3~15)야고보서 1장 13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정직한 실상을 폭로합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신다. 시험은 너희 안에서 일어난다." 이 말은, 우리가 고난이나 유혹을 만날 때 흔히 하나님 탓을 돌리는 태도에 일침을 놓는 말씀입니다.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헬라어로 페이라조, 즉 유혹하고 무너뜨리려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도키마조, 즉 시험을 통.. 2025. 6. 8.
탐심(에피뚜미아)에 대한 성경적 이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로마서 7:7) 헬라어 에피뚜미아는 단순히 '탐심'이라 번역되지만, 본래의 뜻은 ‘갈망, 욕구, 열망’입니다. 이 단어는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능적인 성향 혹은 자연스러운 ‘원함’까지 포함하는 중립적인 개념입니다. 따라서 에피뚜미아는 무조건 죄가 아니라, 그 욕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발현되는가에 따라 죄가 될 수도, 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숨 쉬듯 ‘원하는’ 존재입니다. 더 좋고, 더 편하고, 더 의미 있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갈망합니다. 성경은 이 갈망을 ‘에피뚜미아’.. 2025. 6. 8.
사망을 지나 영생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이 구절은 복음을 가장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요약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익숙하게 듣고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 '사망', '영생'이라는 단어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무게를 놓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한 진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개념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하나님이 죽으실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이 교회 게시판에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사유 구조가 복음을 오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 중 하나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 우리가 이해하는 생명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 202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