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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200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 “이모야.” 그녀는 주름살투성이 얼굴 속에 깊은 밤의 연못처럼 고요히 잠긴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은 오래된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문득 물었습니다. “그곳에는 헤어질 때 뭐라고 말해요? 작별에 해당하는 말이 있나요?”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바람에 그을린 얼굴 위로 아주 옅은 마음의 파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강물 쪽으로 시선을 옮긴 채,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 없어.”그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헤어짐에 이름을 붙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안녕, 잘 가, 다음에 보자, 부디 잊지 말아 달라는 말들입니다. 헤어짐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말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언어에는 그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우리는 그냥.. 2025. 12. 18.
연필 안에 숨은 단어들 책상 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놓여 있는 연필 하나를 집어 듭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흔한 도구입니다. 나무와 흑연으로 이루어진, 이미 수많은 손을 거쳐 왔을지도 모를 물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연필 안에는 아직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단어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그 단어들은 아직 씌어지지 않았고, 한 번도 입 밖으로 말해진 적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교훈으로 정리된 적도, 지혜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진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들은 연필심의 까만 어둠 속에서 깨어 있습니다. 마치 들을 준비는 되어 있으나, 말할 준비는 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말들, 설명과 주장과 변명과 설교를 그들은 조용히 듣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 2025. 12. 17.
충분함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충분합니다. 이 몇 마디 단어들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아직 부족하다”는 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이루어야 하며,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나는 늘 미완성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무언가가 더해져야만 비로소 괜찮아질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말입니다.그러나 가만히 멈춰 서서 숨을 들이마셔 보면, 이 호흡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아무 성취도 내세우지 않아도,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허락받은 것이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만일 이 호흡조차 충분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저 이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 2025. 12. 17.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 삶을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장 멀게 느껴질 때는, 삶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에 타 종잇조각처럼 손에서 흩어져 버릴 때,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재뿐이고 그 재가 목을 막아 숨조차 쉬기 힘들 그때 삶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 삶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슬픔은 조용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옆자리에 털썩 앉아 버립니다. 마치 열대의 한낮처럼 숨이 막히게 덥고, 공기는 물처럼 무거워져 폐로 숨 쉬는 대신 아가미가 필요할 것만 같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몸은 가라앉고, 마음은 계속해서.. 2025.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