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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말씀 묵상25

오직 그 이름으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세상은 ‘착한 일’을 심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병자를 일으켰습니다. 누구나 감동할 만한 일이지만, 세상은 그 일을 ‘착한 일’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재판정에 세웠습니다. 왜일까요? 세상은 자기 힘과 명예, 체제를 흔드는 복음을 결코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착한 일, 곧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습니다.성경이 말하는 ‘착한 일’이란 단순히 선행이나 도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 때 “보시기에 좋았다(토브)” 하신 그 ‘좋음’이 회복되는 일, 즉 인간이 본래의 자리, 하나님의 뜻 안으로 돌아오는 .. 2025. 11. 11.
회개와 돌이킴, 그리고 진정한 유쾌함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다.”(사도행전 3:19)사도행전 3장 19절은 단순한 권면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 신앙의 핵심,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삶의 변화와 그 실제적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우리에게 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유쾌함, 참된 기쁨이 우리 삶에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회개를 단순히 ‘죄를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단순한 반성이나 뉘우침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회개의.. 2025. 11. 3.
유쾌하게 되는 날 - 죽음의 방에서 새 바람으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사도행전 3:19)여기서 ‘유쾌하게 되는 날’은 단순히 “기분 전환”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로 번역하면 “숨을 다시 들이마시다”, “질식 직전에서 다시 호흡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문헌에서 이 단어는, “질식해 죽어가던 사람이 외부로부터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때 들이마시는 첫 숨” 을 가리킵니다.즉, 생명의 부활적 회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새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실 것”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이건 심리적 유쾌함이 아니라 존재의 새 창조입니다.오늘의 세상은 끊임없이 “리프레쉬”를 말합니다. 휴가, 술.. 2025. 10. 29.
성전 미문 앞에서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 줄 아노라.” (사도행전 3:17)이 말씀은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일어난 사건 후, 군중에게 설교하며 한 부분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다”는 말로, 인간의 무지와 죄,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있는 은혜를 선포합니다.앉은뱅이는 인간의 실존을 상징합니다. 그는 성전 미문(‘아름다운 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문은 하나님의 임재 앞 문턱까지 왔지만 결코 들어가지 못하는 인간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세상은 아름답다”, “살 만하다”는 허상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성전 문 앞에서 동냥만 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스스로 걸을 수도, 스스로 구원받을 수도 없는 절대 .. 2025.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