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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216

유다의 이야기로 본 복음의 실체 성경은 때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숨기지 않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38장은 그런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유다’,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 메시아가 나올 지파의 조상으로서, 복음의 혈통을 잇는 중대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유다의 삶에 대해 거의 침묵하며, 유일하게 다말과의 불륜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하고 이상한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가 숨어 있습니다.하나님은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 장자의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유다를 축복하며 이렇게 예언합니다. “유다는 사자의 새끼로다… 규(왕권)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신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창 49:9~10)이 말은 유다의 자손에게.. 2025. 6. 28.
혼인잔치의 비유에 담긴 진실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나 합당하지 아니하더라.”(마태복음 22:8)예수님의 혼인잔치 비유는 단순한 초대장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피 묻은 초청장입니다. 그것은 살과 피로 잉크를 삼아, 포도즙 틀에서 짓밟힌 구속주의 발자국으로 도장을 찍은 하늘의 전쟁서신입니다. 그 전쟁은 세상을 향한 것도, 단지 사탄을 향한 것도 아닙니다. 그 전쟁은 우리의 자아를 향한 것, 곧 '나'라는 옛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침공인 것입니다.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는 단순한 메시아 도래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귀는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였습니다. 스가랴서 9장의 예언에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단어를 덧붙이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민족 해방의 전사였고, 정치적 권세.. 2025. 6. 28.
말씀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 어느 날,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내게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습니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덮개가 진리의 생기를 감싸고 있었고, 나의 경건의 시간은 반복되는 의무감으로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습관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냐?”그날 이후, 나는 경건의 시간의 본질을 다시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은 단순한 종교적 루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의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멈추고, 묵상하고, 머무는 시간을 회복하려 애썼습니다.경건의 시간은 말씀을 통해 시작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2025. 6. 28.
십자가로 읽는 비유,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누가복음15:11~14)우리는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말씀을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이야기이고, 회개와 용서를 주제로 설교나 교재에서 자주 등장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유를 너무도 자주 '돌아온 아들'에게 초점을 맞춰 이해해왔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던 아들이 돌아오고, 아버지가 그를 .. 2025.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