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으로 사는 삶210 말씀과 신비,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교회 어느 시대나 교회는 두 갈래의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잡아가려 애써 왔습니다. 하나는 말씀 중심의 이성과 진리의 길이고, 또 하나는 신비 중심의 감성과 체험의 길입니다. 두 길은 결코 서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고 견제하며 성숙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 이 둘은 종종 충돌했고, 때로는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부풀려지거나 억눌림으로써 교회의 건강한 균형을 무너뜨려 왔습니다.오늘날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자각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하나님인 양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신비주의에 기울어 극단적 체험을 진리로 간주하고, 이단적 사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씀주의에 치우친 사람들 역시 체험을 경멸하고 오직 글자 속 진리만을.. 2025. 7. 5.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 정체성과 진리의 가치에 대하여 세상의 한 귀퉁이, 남극의 눈 덮인 벌판에 순백의 털을 가진 백곰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흰 눈과 얼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자신의 삶의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흑곰이 그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여기처럼 추운 지방에서는 햇볕을 흡수할 수 있는 검은 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하얗게 살아갑니까?”그 말은 백곰의 마음에 작은 의심을 심었습니다. 자신이 지닌 흰색의 아름다움이, 생존의 지혜였고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였음을 잊고, ‘더 따뜻하게 보이려면,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려면, 더 눈에 띄지 않으려면’ 검은색이 더 낫겠다는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결국 그는 검은 물감을 들여 자신의 본래의 색을 지워버립니다. 더 따뜻해졌을지 몰라도,.. 2025. 7. 4. 썩은 가지의 결말 – 진정한 선행과 은혜의 길 어떤 농가에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가 찾아와 밥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그러나 비정하고 욕심많은 농부의 아내는 밭에 가서 다 썩어가는 마늘 줄기 하나를 뽑아주며 “이거라도 먹을 테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그것으로 겨우 배고픔을 달랬습니다.세월이 흘러 농부의 아내가 죽어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천국에 보내주세요.” 그녀의 말에 천사는 생전에 그녀가 나그네에게 주었던 썩은 마늘 줄기를 보여주면서 이것을 붙잡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그녀는 좋아하면서 한쪽 끝을 잡고 천사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오르기 전 썩은 마늘 줄기가 뚝 끊어져 농부의 아내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톨스토이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025. 7. 4. 종의 형체를 입으신 주님처럼 “오직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7)머슴 목회자 이자익(1879∼1959) 총회장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큰 바위 얼굴’로 통합니다. 20여개 교회를 설립하고 세 차례나 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냈으면서도 명예나 권력, 재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작은 농촌교회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일제강점기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했습니다.1942년 장로교 총회를 재건한 그의 행정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함태영 부통령이 장관 입각을 제안했지만 역시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자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목사로 종신하겠다”는 게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70세 고령에도 장로회 대전신학교를 설립한 열정의 목회자였습니다. 교계 ‘법통’으로도 불렸습니다.. 2025. 6. 28. 이전 1 ··· 43 44 45 46 47 48 49 ··· 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