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227 이세벨의 가르침 -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신앙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요한계시록 2:20)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로 칭찬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겉모습만 본다면,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성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단 한 가지 치명적인 책망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세벨의 가르침을 용납했다”는 것입니다.성경의 이세벨은 아합 왕 시대의 실존 인물이지만, 요한계시록의 이세벨은 단순히 한 여인이 아니라 거짓된 신앙 체계와 세속적 욕망의 상징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실제로는 ‘자기 배를 섬기는 종교’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 이것이 이세벨의 영입니다.사도 바.. 2025. 10. 24.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우리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너무도 달콤하고, 너무도 영광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종종 너무 짧습니다. 그의 임재가 우리의 영혼을 감싸며 환희로 충만하게 하시다가도, 어느새 주님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마치 산등성이를 달리는 노루처럼, 향기로운 땅으로 가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은 아쉽고 허전합니다. “왜 주님은 나를 두고 가셨을까?” “왜 그 은혜로운 감격이 이렇게 금세 사라졌을까?” 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쁨 속에 안주하지 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2025. 10. 23. 믿음으로 보고 경험하는 영적인 실재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한복음 14:7)13세기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을 걸쳐 방대한 신학서를 집필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신학대전은 인간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지금도 신학의 정점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의 마지막 고백에 있습니다.1273년 어느 날, 그는 미사 중에 강력한 신비 체험을 한 후, 그날 이후로 글쓰기를 멈추었습니다. 그의 동료 수도사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내가 본 그 실재에 비하면 지푸라기에 불과합니다.” 그의 말은, 인간의 지식과 언어로 쌓은 모든 신학이 ‘하나님의 실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사실을 고.. 2025. 10. 21. 이세벨의 영, 오늘의 교회 속으로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요한계시록 2:20)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이세벨의 가르침”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세벨은 구약의 바알 숭배를 이스라엘 안으로 들여온 여인입니다. 그녀의 이름 자체가 “바알과 함께”라는 뜻을 가진 엣바알의 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대신 ‘바알과 함께’를 외친 자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거짓 신앙의 뿌리입니다.예수님은 그 교회 안의 ‘이세벨’을 “자칭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 하나님은 자기 욕망을 들어주는 신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예배는 회개가 아닌 흥분이었고, 그녀의 기도는 순종이 아닌 거래였습니다.오늘 우리의 교회 예배가 바로 그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배당에서 손을 들고 .. 2025. 10. 17.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