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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글503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무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느니라”(고린도전서 7:20, 12:18)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햇빛의 각도가 달라지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도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그것은 문제도, 결핍도 아니었습니다. 나무는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그러나 어느 화창한 봄날, 나무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질문은 생각보다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저 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아무것도 하.. 2025. 12. 19.
마지막 날들 - 사랑이 남긴 일 사람은 어떤 소식을 들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무슨 일일지 짐작이 갑니다.” 그는 그렇게 일기에 적었습니다. 그러나 짐작과 현실은 전혀 다른 무게로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진료실의 굳은 얼굴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라는 말, 네 사람이 동시에 흘린 눈물은 세상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의학의 언어는 단정했고, 그 단정함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연약했습니다.그는 왜 지금인지, 얼마나 남았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집에서 죽어도 될까요?” 이 질문 하나에 그녀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겼는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치료의 가능성보다, 시간의 연장보다, 마지막 순간을 어디서, 누구와 맞이할 것인가가 그녀에게는 더 .. 2025. 12. 18.
비유 - 개와 돼지 그리고 그들에게 던져진 진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복음 7:6)이 말씀은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예수님이 왜 사람을 개와 돼지에 비유하셨을까? 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라는 말씀일까?아니면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경고일까? 그러나 이 말씀을 그렇게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오해한 것입니다. 복음은 본래 죄인을 위해 주어진 것이고, 교회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경고하신 “개와 돼지”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이 비유는 마태복음 7장 한 절만 떼어 읽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먼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 2025. 12. 18.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 “이모야.” 그녀는 주름살투성이 얼굴 속에 깊은 밤의 연못처럼 고요히 잠긴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은 오래된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문득 물었습니다. “그곳에는 헤어질 때 뭐라고 말해요? 작별에 해당하는 말이 있나요?”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바람에 그을린 얼굴 위로 아주 옅은 마음의 파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강물 쪽으로 시선을 옮긴 채,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 없어.”그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헤어짐에 이름을 붙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안녕, 잘 가, 다음에 보자, 부디 잊지 말아 달라는 말들입니다. 헤어짐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말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언어에는 그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우리는 그냥.. 2025. 12. 18.